[길섶에서] 능소화 담장/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능소화 담장/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5-06-29 23:02
수정 2015-06-2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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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가 한창이다. 종 모양의 주홍 꽃송이를 매달고 여기저기 담벼락을 점령 중이다. 손톱만 한 여지만 있어도 휘감아 오르고, 골목의 발자국 소리가 궁금해 기어이 담장을 넘는 꽃. 소박한 여름꽃인 줄로만 알았는데, ‘양반꽃’이라는 별칭이 있다니 뜻밖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꽃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옛날엔 양반집 마당에만 허락됐다. 여염집에서 심었다가는 관가로 붙들려가 곤장을 맞았다. 영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닌 듯하다. 소설 ‘토지’에서 최참판댁 사랑의 담장에 피어 기세등등 권세를 대신 말했던 꽃이 저 능소화 아닌가.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에도 많았다. 한철 빳빳이 고개 쳐들다가 미련 없이 뚝뚝 송이째 떨구는 꽃. 괴팍한 성질이 양반의 절개와 엇비슷이 닮았다.

출퇴근길 지나는 대학교의 정문 담벼락에 전에 못 보던 능소화가 만발했다. 공룡 같은 건물을 부드럽게 호령하는 자태가 참신하다. 그야말로 ‘안구 정화’다. 순한 먹거리의 ‘계절 밥상’에는 악착들을 떨면서 왜 도처의 콘크리트 담장은 두고만 볼까 생각한다. 철철이 꽃을 허락하는 ‘계절 담장’이 도시 미관용으로 어떤가. 이맘때라면 능소화만 한 게 없지 싶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5-06-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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