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 여걸, 에르난데스 사망

쿠바 혁명 여걸, 에르난데스 사망

입력 2014-03-11 00:00
수정 2014-03-1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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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의 영웅으로 추앙받아온 멜바 에르난데스가 9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는 에르난데스가 당뇨에 따른 합병증을 오래 앓아오다가 9일밤 (현지시간) 아바나에서 숨을 거뒀다고 10일 보도했다.

아바나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에르난데스는 쿠바 혁명의 시발이 됐던 1953년 몬카다 병영 습격에 참가한 두 명의 여성 중 한 명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100여 명의 혁명군을 이끌고 시도했던 몬카다 습격은 실패로 끝났지만 6년 뒤 당시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몬카다 습격이 실패한 뒤 에르난데스는 당국에 체포됐다가 이듬해 풀려나 멕시코로 망명한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혁명 전선에 계속 참가했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가 1956년 멕시코 동부 베라크루즈 해안에서 ‘그란마’로 명명한 요트에 혁명군과 함께 타고 쿠바의 산티아고데쿠바 해안에 상륙해 본격적인 혁명 투쟁을 시작하게 하는 일을 도왔다.

에르난데스는 피델 카스트로가 몬카다 습격 이후 체포돼 옥중에서 남긴 기록들을 빼내 정리한 뒤 이를 인쇄해 전파함으로써 그의 혁명 사상을 퍼트렸다고 그란마는 평가했다.

에르난데스가 정리한 문건은 피델 카스트로가 재판을 받을 때 법정에서 남긴 ‘역사가 나의 무죄를 증명할 것이다’라는 말을 표제로 삼았다.

1959년 혁명이 성공하고 공산당이 설립되자 에르난데스는 국회 격인 인민권력국가회의에서 부의장을 지낸 뒤 베트남 대사도 역임했다.

그는 ‘노동의 영웅’, ‘쿠바 공화국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에르난데스는 자신을 화장해 몬카다 습격에 참가한 전사들과 함께 산티아고데쿠바의 묘지에 묻힐 수 있도록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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