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양산에 사는 ‘망절일랑’씨…망절이 성?

경상남도 양산에 사는 ‘망절일랑’씨…망절이 성?

입력 2010-03-24 00:00
수정 2010-03-2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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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절(網切).

 언뜻 들었을 때는 한국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어도 아닌 듯한 이 희귀한 한국 성씨에 멀게는 수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일 양국의 질긴 역사가 담겨 있다.

 24일 미국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에 따르면 김(金),이(李),박(朴) 등 20개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65%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에서 경상남도 양산에 거주하는 망절일랑(網切一郞.67)씨의 성씨인 ‘망절’은 유난히 눈에 띈다.

 그가 자신의 후손들을 비롯해 10명에 불과한 망절 성씨의 시조가 된 데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찾아 헤맸던 육십 평생뿐만 아니라 양국의 역사가 반영돼 있다.

 망절일랑,일본식으로는 아미키리 이치로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하던 1942년이었다.

 그는 경찰서에 근무했던 아버지가 1945년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배와 더불어 본국으로 추방된 이후,일본인의 혈육이란 사실이 손자에게 미칠 화근을 두려워했던 외할아버지의 성을 따라 양일랑으로 자랐다.

 한국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급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양일랑은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야 일본에 있는 아버지가 인편을 통해 자신을 수차례 찾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양일랑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따라 NHK방송의 도움으로 규슈(九州) 가고시마현(鹿兒島縣) 다네가시마에서 암으로 투병 중이던 아버지와 편지 교환을 시작했다.

 그는 곧 한국 법원에 원래 이름을 회복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일본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이 존재했던 시절이라 ‘아미키리 이치로’로 살고 싶다는 그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겨우 찾은 중재안은 일본 이름의 한자를 한국식으로 읽은 망절일랑(網切一郞)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일랑은 1970년대 아버지가 이미 사망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친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성씨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전해 듣게 된다.

 망절의 일본식 발음,즉 아미키리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 최고권력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전쟁에서 공을 세운 그의 조상에게 수여한 성씨였다는 점에서 성씨에 담긴 양국의 질긴 인연은 수백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일랑씨는 이러한 사실을 가까운 한국인 친구들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고 털어놓으면서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한국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살 궁리도 잠깐 했으나 아버지 유산을 두고 일본인 사촌 등과 갈등을 겪으면서 이내 포기했고,이후로는 한국에서 버섯 농사를 지으며 유명해졌다.

 그러나 일본인의 핏줄임이 드러나는 특이한 희귀 성씨 덕에 가족들이 겪은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다.

 아내와 결혼 당시 처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고,인구통계 조사원들이 집을 방문하는가 하면 자신도 아이들의 학교를 찾아 설명을 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일랑씨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너희들의 성이 특이한 만큼 죄를 지으면 경찰이 잡기도 쉬울 것이다.하지만 반대로 선행을 하면 모든 이들이 기억해줄 거다’라고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손녀 한 명이 일본식 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친구들의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망절 가문의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에서 양국 관계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3년에 한 번씩 가족들과 함께 일본에 있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다는 망절씨는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궁금증이 생겨납니다.(제가 죽은 뒤) 일본에 있는 아버지의 무덤 옆에 묻혀야 할지,아니면 여기 있는 아이들 곁에 머물러야 할지 말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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