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치매 엄마, 2주간 딸 시신과…

70대 치매 엄마, 2주간 딸 시신과…

입력 2013-03-29 00:00
수정 2013-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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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딸 죽은 줄도 모르고 이불 덮어주고 죽 쑤어줘

70대 노인이 함께 사는 딸이 죽은 줄도 모르고 2주 넘게 시신을 돌보다 사회복지사에게 발견됐다.

지난 25일 오후 2시쯤 서울 구로구 구로5동 주택가를 순찰하던 차모(45) 경사는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배가 고프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차 경사가 빵과 우유를 건넨 뒤 이것저것 물었지만, 할머니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차 경사는 구로구에 “치매 노인이 혼자 굶고 사시는 것 같으니 한 번 살펴봐 달라”고 요청했다.

몇 시간 뒤 구로구 사회복지사가 치매 노인의 집을 찾았다. 집안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내부를 살피던 그는 화장실 문을 열어 보고 기절초풍했다. 여성의 시신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사망자는 김모(74)씨의 딸(46)이었다. 발견 당시 딸은 옷을 모두 입은 채 이불을 덮고 있었고, 거실 식탁에는 곰팡이가 핀 죽이 놓여 있었다. 집 안에서는 숨진 딸이 복용한 듯한 우울증 약이 발견됐다. 경찰은 시신 부패 정도 등을 볼 때 딸이 사망한 지 2주가 넘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시신에 외상이 없고 2주 넘게 집에 드나든 사람도 없어 타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딸이 2주 넘게 화장실에 누워만 있자 잠을 자는 것으로 생각해 이불을 덮어 준 것으로 보인다”면서 “죽에 핀 곰팡이 상태를 볼 때 3~4일 전까지도 할머니가 딸을 위해 죽을 쑨 것 같다”고 말했다. 숨진 김씨의 남동생은 경찰에서 “누나가 15년 전부터 어머니를 보살폈지만 최근 8년간 거의 왕래가 없었다”고 말했다.

숨진 딸은 미혼으로 한때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별다른 직업이 없었다. 또 몇 년 전 찾아온 우울증 탓에 약에 의존해 살아왔다. 경찰은 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시신을 부검하기로 했다.

집 안에는 끼니를 챙길 만한 먹을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우울증을 겪는 딸 혼자 중증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지만 도움받을 곳은 없었다. 주택 보유자인 데다 서류상으로는 2명의 자녀가 있어 할머니는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김찬우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돌봄 서비스를 내놓고 있지만 한정된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수혜는 극빈층에게만 돌아가는 일이 많다”면서 “숨어서 신음하는 치매 노인 가정이 많은 점을 고려할 때 치매 인구를 파악하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2013-03-2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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