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결과 가져올 때 이혼 제한하는 ‘가혹조항’ 병행
바람 핀 배우자의 청구라고 하더라도 혼인관계가 완전히 파탄 났다면 이혼을 허용하는 국제적인 추세다.다만, 잘못이 없는 배우자에게 가혹한 결과를 낳는다면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이른바 ‘가혹조항’을 대부분 도입하고 있다.
우리도 파탄주의를 취하려면 이런 가혹조항을 도입하는 것은 물론 배우자 부양제도나 재산분할, 미성년 자녀 보호를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 유책주의만 고수는 한국이 거의 유일
우리 법원이 채택한 유책주의는 혼인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청구를 할 수 없도록 한다는 원칙이다. 세계적으로는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를 떠나 현실적으로 관계가 깨졌다면 이혼을 인정하는 파탄주의가 대세다.
미국은 1969년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1985년에는 모든 주에서 파탄주의를 도입했다.
부부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 났거나, 일정기간 별거하면 이혼을 허용하는 식이다. 주마다 다르지만, 이혼을 청구하려면 60일에서 5년까지 별거기간을 가져야 한다.
1976년 파탄주의를 도입한 독일은 부부가 3년 이상 별거하면 원인에 관계없이 혼인이 파탄된 것으로 보고 이혼을 허용하고 있다. 별거상태인지만 인정되면 실제로 관계가 파탄 났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부부의 사생활까지는 살피지 않는다.
1975년 유책주의 폐해를 인정해 파탄주의를 도입한 프랑스는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를 모두 택하고 있다.
우리나라 유책주의의 모델인 일본도 1985년 사회 변화를 반영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도 인용하고 있다.
◇ 가혹조항 등 약자 보호 장치 마련 필요
파탄주의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도 잘못이 없는데도 이혼을 당하는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는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26일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파탄주의 입장을 역설한 김수진 변호사도 상대방에게 가혹한 결과를 가져올 때 이혼을 제한하는 이른바 ‘가혹조항’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가혹조항은 파탄주의를 취하는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도 도입하고 있다.
독일이나 영국은 상대방에게 재정적 고통을 주거나 자녀의 이익을 위해 혼인을 유지할 필요가 있으면 이혼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도 상대방이 이혼으로 정신적·사회적·경제적으로 극히 가혹한 상태에 놓이는 등 현저히 사회정의에 어긋날 때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배척한다.
이혼 배우자를 재정적으로 보호하고 자녀의 복지를 고려한 ‘부양조항’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 민법에서는 이혼 후 상대배우자에게 부양료를 지급하는 규정이 없지만 외국에서는 재산분할과 별도로 생계능력이 없는 당사자의 청구에 따라 부양료를 정기적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나라가 많다.
이화숙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부양료 지급에 관한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고,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지금보다 폭넓게 인정하려면 이혼 후에도 부양 의무를 인정하고 위자료 액수를 상향하는 등 법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미성년 자녀의 복리를 위한 제도를 구축하는 등 파탄주의를 도입하려면 이혼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될 배우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들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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