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폭력 양상 비슷하고 장기간 계획…유사성 있다” 판단과거에도 비슷한 수위의 폭력시위 많아…유죄 인정 미지수
경찰이 ‘11·14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최한 한상균(53) 민주노총 위원장 등 집회 관계자 3∼4명에 형법상 소요죄 적용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해 주목된다.경찰은 지난달 14일 집회가 소요죄가 적용됐던 1986년 ‘5·3 인천사태’와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 사건의 판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5·3 인천사태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6년 5월 3일 인천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로 129명이 구속된 사건이다.
당시 재야와 학생운동권은 신한민주당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추진에 반대하면서 인천시민회관 일대 도로를 점거한 채 거센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며 강경 진압에 나섰고, 시위대도 경찰관을 폭행하고 경찰차량을 파손하는 한편 민주정의당사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1986년 1심인 서울형사지방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및 소요 등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해 “사전 모의를 거쳐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집회를 개최했다”며 소요죄를 인정했고 이는 대법원에서도 확정됐다.
당시 피고인 중 1명이 김문수 전 경기지사다.
수사기관에서 시위대에 소요죄를 적용한 사례가 이 사건이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약 30년 만에 소요죄 적용이 추진되는 것이다.
경찰은 시위대가 인천시민회관 주변 교통을 마비시키고 경찰을 다치게 하는 등 폭력시위를 벌인 인천사태와 지난달 총궐기 당시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다고 봤다.
총궐기 집회에서 시위대가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세종로사거리 일대 도로를 점거해 이 일대 교통을 심하게 방해했고, 경찰을 상대로 한 폭력행위도 동반했다는 점에서 시위대가 집단으로 이 지역의 ‘사회적 평온’에 해를 끼쳤다는 것이 경찰의 시각이다.
경찰은 1차 총궐기 집회의 폭력시위가 장기간 치밀하게 기획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경찰은 한 위원장이 민노총 위원장으로 선출되는 순간부터 1년간 폭력시위를 준비했고, 이와 관련한 역할 분담과 자금 투입 내역 등이 수사에서 드러났다면서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구속된 한 위원장을 상대로 보강 조사를 벌여 이르면 이번 주말까지 그에게 소요죄 등을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고, 나머지 주최 측에 대한 수사에도 주력할 예정이다.
소요죄는 ‘다중이 집합해 폭행, 협박 또는 손괴의 행위를 한 자’에게 적용되는 조항이다. 유죄가 인정되면 1년 이상∼10년 이하의 징역·금고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소요죄의 형량은 개별 시위 참가자에게 적용되는 죄목과 비교할 때 딱히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도로를 점거하고 교통을 방해한 행위에 적용되는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는 형량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 벌금이다.
그럼에도 경찰이 한 위원장 등에 대한 소요죄 적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집회에서 발생한 불법·폭력행위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집회 주최자에게 묻는 하나의 사례를 남겨 ‘본보기’를 세우겠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경찰은 과격 시위자뿐만 아니라 집회 주최자에 대한 수사도 하고 있지만 정작 집회 당일 이들의 눈에 띄는 행적을 발견하지 못해 수사가 진척을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과 긴밀하게 협의를 하고 있기에 한 위원장에 대해 소요죄로 기소할 개연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소요죄가 유죄로 인정될지는 미지수다.
30년 전인 인천사태 이후에도 시위 현장에서 경찰관에게 쇠파이프나 각목을 휘두르고, 경찰 차벽에 줄을 달아 끌어당기거나 파손하는 등의 과열 시위는 더러 있었다. 도로를 장시간 점거하면서 교통에 영향을 미친 집회도 많았다.
가까운 예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에는 시위대가 광화문 일대를 점거하고 청와대 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다 이를 막는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대치하면서 주변 차량 통행이 장시간 불가능해진 경우가 잦았다.
과거 집회들의 불법·폭력시위와 비교할 때 1차 총궐기 집회의 양상이 특별히 더 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대통령까지 1차 총궐기 집회를 거론하고 나서자 수사기관이 무리하게 소요죄를 적용하려 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1차 총궐기 집회를 계기로 30년 만에 다시 수면으로 떠오른 소요죄 조항의 적용 여부는 법원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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