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거수기’ 눈총 사외이사제 변화 시험대
경영진의 의견에 무조건 동의만 표시한다고 해서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아온 금융권 사외이사 제도가 변화의 시험대에 올랐다.올해 우리·KB·신한·하나 등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의 3분의2가 교체될 예정인 가운데 각 지주사의 노조들이 사외이사 추천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외이사 선임을 좌지우지했던 지주 회장들은 법규정에 따라 올해부터 아예 사외이사 추천위원회에서 배제된다. 이에 따라 ‘투명한 경영 감시’라는 사외이사 제도의 원래 취지가 되살아날지 관심이 집중된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 노동조합은 신한카드, 신한생명, 신한금융투자 등 계열사 노조와 함께 모회사인 신한금융지주 주주총회에 사외이사를 추천하기로 했다. 김국환 신한은행 노조 위원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경영을 투명하고 건전하게 감시하고자 계열사 노조와 함께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010년 신한금융사태 당시 노조와 우리사주조합원들의 뜻을 이사회에 전달했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은 것에 한계를 절감했다.”며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경영진을 견제할 의사를 내비쳤다. 신한금융 우리사주조합은 지분율이 3.56%로 국민연금(7.34%)과 BNP파리바(6.35%)에 이은 3대 주주이다.
신한은행 노조는 사외이사 추천 기준과 절차를 포함한 우리사주조합의 운영방안과 관련, 외부 전문업체에 컨설팅을 의뢰할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노동·진보계를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라 금융 전문 지식이 있고 사측이 봐도 수긍할 만한, 사회적 평판을 받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하겠다.”면서 “이르면 내년 초에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4대 지주 사외이사 3분의 2 교체 예정
앞서 국민은행 노조도 KB금융지주의 지분 0.91%를 보유한 우리사주조합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지난 10일 사측에 사외이사 추천을 위한 주주제안서를 제출했다. 국민은행 노조는 김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할 계획이다. 박홍대 국민은행 노조 경영참여실장은 “지난 1년 동안 지주 사외이사 8명의 이사회 활동 현황을 보면 모든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며 거수기 사외이사 교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올해 4대 금융지주와 은행의 사외이사 57명 가운데 3분의2에 달하는 36명의 임기가 끝난다. 올해부터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사내이사의 사외이사 추천도 금지된다. 지주 회장이 사외이사를 추천할 수 없기 때문에 독립적인 사외이사 선임의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권 노조가 사외이사를 추천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런 호기를 놓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2012-02-20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