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의 결정 생략하고 8월15일보다 앞당겨 발표할 가능성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의 패전 70주년을 맞이해 발표할 전후 70년 담화와 관련해 꼼수를 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전후 70년 담화에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를 담아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지만 아베 총리는 이런 내용을 배제하고 자신의 신조(信條)대로 담화를 발표하기 위해 전례를 벗어난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일단 각의 결정을 거쳐 정부의 공식 견해로 발표하는 경우 내용에 관한 논쟁·비판 가능성이 크므로 각의 결정 자체를 생략할 가능성이 부상하고 있다.
각의 결정은 통상 각료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하므로 사전에 연립 여당인 공명당과 내용을 조율해야 하지만 개인 견해 형식을 취하면 그럴 필요가 없어 내용에 대한 아베 총리의 결정권이 그만큼 커진다.
이 경우 전후 70년 담화는 각의에서 결정된 ‘총리 담화’가 아니라 아베 총리가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고서 발표한 것처럼 각의 결정 없이 ‘총리의 담화’라는 미세하게 다른 이름으로 발표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명칭은 비슷하지만 ‘총리 담화’는 정부의 공식 견해이고 ‘총리의 담화’는 명목상 총리의 개인 견해라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아베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를 패전일(8월 15일)이 아니라 이보다 앞당겨 8월 초에 발표할 뜻을 굳혔다고 여당 간부를 인용해 보도했다.
정부 공식 견해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의견을 표명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발표 시기의 차이를 함께 거론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전후 50년과 60년에 각각 각의 결정을 거쳐 정부 견해로 발표된 무라야마(村山)담화와 고이즈미(小泉) 담화는 패전일에 발표됐다.
또 담화 내용에 대해 국회에서 논쟁이 일더라도 오본(御盆, 양력 8월 15일로 일본의 백중에 해당) 연휴가 있어 이를 일단락 짓는 효과가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늘 얘기했던 대로 ‘무라야마 담화를 포함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에 관한 담화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되 사견을 전제로 역사 수정주의적 견해를 담은 담화를 따로 발표하게 되는 셈이다.
아베 총리가 이런 방식으로 원하는 효과를 얼마나 거둘 수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국이나 중국 등 식민지 지배나 전쟁의 피해를 겪은 국가는 형식보다는 내용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견해가 아니다’는 이유로 사죄를 외면한 아베 총리의 담화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을 견제하는 정치·사회 세력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꼼수 구상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는 전후 70년 담화를 “정식으로 각의에서 결정해 정부 견해로서 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24일 지적했다.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는 “정부·여당이 일정한 합의를 한 후에 최종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며 담화를 아베 총리의 입맛대로 발표하면 안 된다는 뜻을 표명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25일 사설에서 국내외의 비판을 피하려는 방편으로 각의 결정 없이 담화를 발표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담화를 내지 않는 것이 어떠냐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가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고 말하거나 2차 대전이 잘못된 전쟁이라는 인식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회피한 점, 전쟁은 반성한다면서도 사죄는 하지 않고 식민지 지배는 언급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전후 70년 담화에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표현을 반영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