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하 한중연 교수 주장
조선 왕실에서는 왕의 생일 같은 큰 경사가 있을 때 잔치를 벌였다.궁중에서 벌이는 대표적인 잔치는 진연(進宴)과 진찬(進饌)이 있다. 진연은 왕실에서 제대로 격식을 갖추고 여는 연회를 뜻하며 진찬은 진연에 비해 절차와 의식이 간단했다.
잔칫상에 올린 음식과 손님들에게 내린 음식은 ‘음식발기’에 꼼꼼하게 기록했다.
’병오 7월 25일 억만세 탄일 진어상 사찬상 발기’는 대한제국 시절인 1906년 7월 25일 고종 황제의 55세 생일날 올린 음식과 손님들에게 하사한 음식을 적은 음식발기다.
이 문서에는 멥쌀가루에 각종 재료를 섞어 색이나 향을 첨가한 떡 ‘각색편’, 어린 닭을 찜통에서 쪄낸 음식 ‘연계증’, 여러 가지 재료를 양념해 익힌 다음 색을 맞춰 꼬치에 꿴 음식인 ‘누름적’ 등 생일상에 오른 음식들이 기록돼 있다.
그런데 이 음식발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이 나온다. ‘요리소 화부인가 보이’.
음식발기에는 ‘요리소 화부인가 보이’에게 쟁반기와 면합을 내렸다고 적혀 있다. 쟁반기는 쟁반에 간단한 음식을 차린 것이고, 면합은 국수를 담은 그릇이다.
쟁반기와 면합을 받은 ‘요리소 화부인가 보이’는 누구일까.
’요리소 화부인가 보이’는 1902년과 1903년 고종의 생신 음식발기, 1906년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의 생신 음식발기 등에도 등장한다.
음식 인류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교수는 “’화부인’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을 운영한 손탁이었다”고 주장했다.
주 교수는 “손탁을 수행한 비서가 바로 ‘화부인가 보이’”라면서 “화부인가 보이는 아마도 손탁의 양자이면서 호텔 보이였던 장경춘이 아닐까 여겨진다”고 추정했다.
프랑스 태생의 손탁은 초대 한국 주재 러시아 대리공사 베베르의 추천으로 궁궐에 들어가 양식 조리와 외빈 접대를 담당했으며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임을 얻어 정계 막후에서 활약했던 인물.
고종에게 정동에 있는 가옥을 하사받은 손탁은 가옥을 헐고 호텔을 지어 운영했는데 바로 구한말 대표적인 사교공간이었던 손탁호텔이다.
주 교수는 “손탁은 정동에 사는 화부인(花夫人)으로 불리기도 했다”면서 “’요리소 화부인’이라 부른 이유 역시 손탁호텔이 당시 왕실의 서양음식 제공처였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주 교수는 11일 한중연에서 열리는 ‘한식 세계화를 위한 조선왕조 궁중음식 고문헌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논문 ‘음식발기에 기재된 요리소 화부인의 정체’를 발표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