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만 있다면 인공지능은 인간 넘어서지 못할 것”

“상상력만 있다면 인공지능은 인간 넘어서지 못할 것”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4-02-25 11:16
수정 2024-02-2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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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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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매니악’의 작가 네덜란드 출신 칠레 소설가 벵하민 라바투트   사진 빅토리아 이글레시아스/문학동네 제공
신작 ‘매니악’의 작가 네덜란드 출신 칠레 소설가 벵하민 라바투트

사진 빅토리아 이글레시아스/문학동네 제공
“1933년 9월 25일 아침,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는 열다섯 살 난 아들 바실리의 머리를 총으로 쏜 뒤 자신에게도 총을 겨눴다. 파울은 즉사했고, 다운증후군을 앓던 바실리는 몇 시간을 더 고통스러워하다 사망 선고를 받았다.”

20세기 초 물리학의 전성시대를 다룬 소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로 2021년 부커상 최종심에 올랐던 네덜란드 출신 칠레 소설가 벵하민 라바투트(44) 신작 ‘매니악’(문학동네)의 도입부다.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컴퓨터 ‘매니악’을 만든 천재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의 행보를 따라가며 인공지능의 아이디어를 내놓는 과정이 이야기 뼈대를 이룬다. 한국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 간 세기의 대결도 책의 3분의1이나 차지한다.

매니악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실존 과학자들을 소재로 상상력을 더한 소설이다. 인공지능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 책은 전작보다 한층 더 깊이 있고 무겁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라바투트는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인간 지성과 인공지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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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왼쪽)와 절친한 친구였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오른쪽)이 에렌페스트의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제공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왼쪽)와 절친한 친구였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오른쪽)이 에렌페스트의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제공
‘우리가 세상을~’과 ‘매니악’ 모두 현대 과학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과 과학적 발견을 소재로 한 과학소설(SF) 같다는 질문에 대해 라바투트는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려고 하지만 양자역학과 같은 현대 과학 이야기를 쓰다 보면 작품의 구조, 문체 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두 책 모두 과학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과학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답했다.

AI 발전 과정을 다룬 소설 ‘매니악’에서 이세돌 9단과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 대결을 다룬 것은 “AI 기술 발전 과정에서 분명한 전환점”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라바투트는 밝혔다. 그는 “어떤 대결은 인생보다 더 진지하고 특별한데,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그런 것”이라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전개됐다”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을 뛰어넘는 지성의 등장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이에 대해 그는 “인공지능이든 뭐든 인간을 뛰어넘는 지성이 잔인함을 보이기 시작하면 걱정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라바투트는 인공지능이 가져오는 미래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중요한 것은 ‘인간’과 ‘상상력’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든, 어떤 기술이 등장하든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인간이 미래로 나가기 위해서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대 사회는 상상력의 위기를 겪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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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기의 대결을 펼치고 있는 모습. 라바투트는 이 대결이 인공지능 기술 발전 과정에서 ‘분명한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신문 DB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기의 대결을 펼치고 있는 모습. 라바투트는 이 대결이 인공지능 기술 발전 과정에서 ‘분명한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신문 DB
라바투트는 최근 작가들도 챗GPT를 많이 사용하는 것에 대해 본인도 자주 사용한다고 밝혔다. 그는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작품 구상과 집필에 훌륭한 도구”라고 답했다. 라바투트는 “많은 사람이 챗GPT의 오류라고 말하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 작가에게는 금광 같다”는 재미있는 말을 했다.

한국말로 ‘환각’으로 해석되는 할루시네이션은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에 포함돼있는 편향성과 오류, 모순 등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잘못된 정보 출력 현상을 말한다. 라바투트는 “챗GPT가 만들어 낸 잘못된 정보를 접하면 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곧바로 글을 쓴다”라면서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과정은 항상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다음 작품 구상과 다음 작품에도 과학자가 등장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라바투트는 “아이디어는 많지만, 글이 전혀 써지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앞길이 보이지 않는 힘든 전환점인 만큼 늘 하던 대로 침묵 속에서 깊이 고민할 것”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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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천재라 불린 헝가리 출신 미국 수학자 존 폰 노이만(오른쪽)과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왼쪽). 노이만은 현대 컴퓨터를 탄생시키고 원자폭탄의 내파 방정식을 만드는가 하면 인공지능의 개념을 만들었다.  미국 프린스턴대 제공
20세기 최고의 천재라 불린 헝가리 출신 미국 수학자 존 폰 노이만(오른쪽)과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왼쪽). 노이만은 현대 컴퓨터를 탄생시키고 원자폭탄의 내파 방정식을 만드는가 하면 인공지능의 개념을 만들었다.

미국 프린스턴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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