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폼페이오 회담 ‘실질적 진전’ 시사에 靑도 반색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정착을 목표로 숨 가쁘게 달려온 문재인 대통령 중재역의 성과가 판가름 날 ‘운명의 6월’이 왔다.11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명문화함으로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좌까지 끌어낸 문 대통령의 역할이 어떤 결실을 거둘지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려 있다.
문 대통령에게 다행스러운 점은 5월 한 달 사이에 미국을 향한 북한의 적대적 언사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취소 선언 등으로 그 성사 여부를 장담할 수 없었던 북미정상회담 준비가 본궤도에 올라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6월 첫날 미국에서 들려온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간 회담 소식은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낳았다.
현지시각으로 5월 31일 김 부위원장과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뉴욕 맨해튼 시내 팰리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한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72시간 동안 실질적 진전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아직 많은 일이 남아 있다”고는 했지만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북미 실무접촉 결과를 아울러 진전이 있다고 평가한 점은 완전한 비핵화와 그에 따른 보상 문제를 놓고 일정 부분 접점을 찾은 것 아니냐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북미 간 실무회담과 고위급회담이 진행되는 상황에 일일이 코멘트할 수 없겠지만 전체적으로 양측이 성의를 보이면서 협상을 타결시키려 최대한 노력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폼페이오의 기자회견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정은 위원장이 거듭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밝힌 것 역시 청와대에는 긍정적인 시그널이라 할 수 있다.
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방북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의지는 변함없고 일관하며 확고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거듭해서 쐐기를 박은 것은 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명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미 간 거리를 좁히는 데 총력을 기울인 문 대통령에게 호재가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관심이 쏠리는 대목은 폼페이오 장관과의 회담을 마친 김영철 부위원장이 1일(현지시각) 수도인 워싱턴DC를 전격적으로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그들(김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금요일(1일) 워싱턴DC로 와서 김정은(위원장)의 편지를 나에게 전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천명해 온 만큼 친서에는 적어도 그러한 내용을 재확인하는 문구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관건은 원칙적 수준에서 비핵화 의지를 밝히는 것과는 별도로 미국이 원하는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론, 즉 ‘행동’과 관련해 김 위원장이 어떠한 수준의 언급을 했을지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과감한 비핵화 초기조치 등 실질적 행동이나 구체적 협상 쟁점과 관련한 의견까지 담겼을지는 미지수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일부 해외반출 등 초기 단계에서 비핵화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조치를 북한에 요구했다는 관측이 지속해서 제기되는 상황이다.
다만, 정상 간 친서가 통상 ‘디테일’보다는 상징적 수준의 내용을 담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은 비교적 포괄적인 표현을 통해 향후 비핵화 과정과 북미 관계와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담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일단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결국 북미 정상이 대좌해 비핵화 결론을 내기 전까지 청와대가 물밑에서 끊임없이 양측의 입장을 중재하고 조율해야 하는 형국은 이어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오는 12일 개최될 것으로 보이는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관련한 일정 수준의 합의가 나온다면 이를 동력 삼아 곧바로 남북미 정상회담을 열고 종전선언까지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남북미 정상회담과 종전선언 여부는 전적으로 북미 정상의 담판에 달려있다는 견해를 밝혀 북미뿐만 아니라 남측도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이 제1의 명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라브로프 장관에게 북미관계·비핵화와 관련해 “새로운 방법으로 각자의 이해에 충만하는 해법을 찾아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며 효율적이고 건설적인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 해결이 진척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체제안전보장 조치를 미국도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반복한 것으로, 일괄타결 해법을 주장한 미국과 좁혀야 할 거리가 만만치 않음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북미가 합의하려면 김정은 위원장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며 이번 기회를 흘려버리는 것은 비극과 다름없다”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북한을 향한 미국의 양보 압박으로 풀이될 여지가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성사 가능성을 키워가는 것과는 별도로 문 대통령의 중재역할은 달이 바뀌어도 계속 시험대 위에 올라있는 셈이다.
한반도 비핵화 정세 속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듯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과의 소통을 늘리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것도 문 대통령의 중재역할에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러시아 외교수장으로 9년 만에 방북한 라브로프 장관은 “대북제재 해제 없이는 한반도 핵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고 비핵화는 단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해 북한의 입장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 역시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리길 바라며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중시해야 하고 중국은 정전협정 서명 당사국으로서 마땅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정세가 종전선언으로 진행되고 나면 남북미 중심으로 이뤄지는 관련 논의에서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는 북중러의 이런 움직임에 맞물려 미일이 접촉면을 더욱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운명의 6월’에 판가름 날 북미정상회담을 거친 뒤에도 한반도 주변의 정세가 북중러와 미일 간 대결 구도로 흐르지 않게 하는 것도 ‘중재자’ 문 대통령의 또 다른 임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