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제라도 올려야 할 상황”…가뭄에 전국이 탄다

“기우제라도 올려야 할 상황”…가뭄에 전국이 탄다

입력 2017-05-30 13:36
수정 2017-05-3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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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지역·섬마을 중심 가뭄 확산…“일주일이면 모두 절단 날 것”광역상수도·관정개발 박차…지자체 대응책 마련 ‘부심’

“기우제라도 올려야 할 상황입니다. 물이 없어 이렇게 고통받는 건 처음입니다.”

17가구 50명이 거주하는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호명리 이장 이명택(52) 씨는 30일 “50년 넘게 이 마을에 살았지만, 물이 없어 올해처럼 고통받기는 처음”이라고 하소연했다.

계속된 가뭄으로 전국 산간지역과 섬 지역을 중심으로 물 부족에 시달리는 마을이 속속 늘고 있다.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삼흥리 하석파 마을은 도내에서 가장 극심한 가뭄 피해를 겪고 있다. 이 마을 52가구 주민 112명은 두 달 넘게 매일 안성시로부터 생활용수를 공급받고 있다. 그동안 소규모 상수도와 지하수로 식수 등 생활용수를 충당해 왔으나 지난 3월 초부터는 물이 아예 말라버렸다. 이달 28일까지는 1주일에 2차례씩 급수 차량이 왔으나 29일에는 하루에만 4차례나 다녀갔다. 인근 논에도 소방차들이 연일 물을 퍼 나르며 말라 가는 벼에 물을 뿌리고 있으나 힘겨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경기도내에서 이들 마을처럼 운반 급수를 받는 곳은 광주시 3개 마을(주민 270명), 안성시 5개 마을(주민 384명), 가평군 6개 마을(주민 288명) 등 모두 3개 시군 14개 마을(주민 940여명)에 이른다.

가평군 호명리 이장 이명택씨는 “지난 23일부터 군청 직원들이 매일 한 번씩 실어나르는 8t짜리 급수 차량의 지원을 받아 주민들이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며 “이 물도 아끼기 위해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마을 전체가 단수에 들어간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빨래는 고사하고 감자와 마늘, 고추, 호박 등 농작물이 거의 말라 죽을 판”이라며 “3년 전부터 군청에 지방상수도 설치 요구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허탈해했다.

고질적인 물 부족에 시달리는 강원 강릉과 속초 등 동해안 시·군은 제한급수를 검토하고 있다.

강릉은 오봉저수지의저수율이 평년의 절반 수준(약 48%)에 불과해 사상 첫 수돗물 제한급수까지 고려하고 있으며 속초시는 주 식수원인 쌍천 지하댐 수위가 위험 수위를 불과 0.5m 남겨둘 정도로 근접하면서 시민에게 절수를 요청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전국 최대 규모 고랭지 배추 재배단지인 태백의 배추밭(920㏊)은 계속된 가뭄 탓에 바짝 말라 바람에 흙먼지만 날리고 있다. 이달들어 이날 현재까지 태백지역 강수량은 14.4㎜로 지난해 같은기간(51.5㎜)의 28% 수준에 그치고 있다.

매년 식수난을 겪는 춘천 서면 안보리와 당림리 주민들은 하루하루 식수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달 들어 이들 마을 300여 가구는 마을 안 계곡, 지하수가 말라 자체 제한급수를 실시 중으로 1주일 전부터 인근 마을에 때아닌 ‘물 동냥’을 하고 있다.

극심한 가뭄에 기우제도 열렸다. 강릉단오제위원회는 30일 세계무형문화유산이면서 국가무형문화재(제13호)인 단오제에서 최명희 강릉시장을 초헌관으로, 비를 기원하는 조전제를 봉행했다.

섬마을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상수도 시설이 없어 지하수에 의존하는 인천지역 섬 마을은 생활용수를 구하기가 다른 지역보다도 훨씬 어렵다. 용수 부족으로 농작물이 말라 죽는가 하면 관정을 새로 뚫어도 지하수가 나오지 않자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에 물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섬들이 늘고 있다.

주민 250명이 거주하는 옹진군 시도(矢島)에서는 최근 관정 3개 중 1개가 고갈돼 하나를 새로 팠는데 물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농업용수용 관정과 염도가 높은 물이 나오는 관정에서 나오는 물을 어쩔 수 없이 마시고 쓰는 상황이다.

80명이 사는 옹진군 소연평도에서도 가뭄과 지하수 고갈 때문에 하루 1시간만 급수가 이뤄진다.

전남 섬 지역에도 제한 급수가 임박했다. 아직 생활용수가 부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비가 계속 내리지 않는다면 다음 달 초순에 격일제 급수가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신안 임자도와 자은도 등은 용수 공급이 우려되고 있다.

충북 청주시 미원면 구방2리에서 밭농사를 짓는 최재학(52) 씨는 두 달 넘게 가뭄과 혈투를 벌이고 있다. 불볕 더위에 땀 범벅이 된 몸을 이끌고 바싹 말라 갈라지는 밭에 양수기로 물을 대느라 분주한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일주일이면 모두 절단 날 것”이라고 탄식했다.

바닥이 갈라진 밭에 뿌리를 내린 양배추와 브로콜리 잎이 말라 누렇게 변했고, 줄기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이 한 눈에 봐도 생육이 좋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이대로 놔뒀다가는 곧 말라 죽을 것이 자명했다. 양수기에서 끌어올린 물이 닿지 않은 밭 가장자리 양배추는 지난주 이미 말라죽었다.

29일까지 충북에서는 청주와 충주의 브로콜리·참깨·옥수수 재배 농가에서 7.9㏊의 시듦 피해가 접수됐다.

상황이 이렇자 지자체마다 속속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경기도는 그동안 기존 소규모 상수도 시설을 이용해 온 광주시 3개 마을에 다음 달 말까지 광역상수도를 공급하기 위한 공사를 하고 있다. 안성시 5개 마을에는 관정 개발 예산 2억2천만원(시 부담액 2억2천만원 별도)을 긴급 확보, 서둘러 관정을 팔 방침이다.

또 각 마을을 대상으로 생활용수 부족 실태를 수시로 모니터링해 관정 개발 지원 등에 나설 계획이며 장기적으로 광역상수도 미보급 지역에 상수관로 설치를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총 39대의 급수 차량도 확보했다.

인천시 상수도본부는 음용수 지원을 요청하는 지역에 수돗물 ‘미추홀참물’ 1.8ℓ들이 4천병씩을 공급하고 생활용수난이 심각한 소연평도에는 어획운반선을 이용해 3일 간격으로 30t씩 용수를 공급할 예정이다. 소청도·소연평도에서 진행 중인 해수담수화 시설 공사도 올해 10월 준공을 목표로 공정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충북도는 산간 마을 등 가뭄 취약지역에 양수기 352대, 용수 호스 42㎞, 스프링클러 792대를 지원하고 가뭄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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