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
이날 한국 대표팀은 약체 피지를 맞아 전반에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였다.
대량득점에 대한 부담 때문에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흔들렸다.
전반 45분 동안 피지의 수비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해 한 골을 넣는 데 그쳤다. 문창진(포항)은 페널티킥을 실축하기까지 했다.
와일드카드로 발탁돼 팀의 주장 완장을 찬 장현수는 전반 종료 휘슬이 울리자 내심 긴장했다.
선수들이 워낙 실수를 많이 한 탓에 휴식시간 라커룸에서 신 감독의 분노가 폭발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라커룸의 분위기는 상상과 달랐다.
차분한 분위기의 신 감독은 먼저 전반에 제대로 공격이 이뤄지지 않는 원인을 선수들에게 설명했다.
상대 진영에서 공격수들이 패스를 받는 과정에서 더 많은 움직임을 보여야 내려앉은 상대 수비에 틈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실수를 질책하지 않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1970년생인 신 감독은 대표팀 선수들과 2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지만 평소에도 형 같은 모습으로 선수들을 챙기는 ‘형님 리더십’을 보여왔다.
형과 같이 자상한 신 감독의 격려는 효과를 발휘했다. 후반 들어 선수들은 전반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후반 16분과 17분 권창훈(수원)이 연속골을 넣으면서 단숨에 스코어를 3-0으로 벌렸고, 후반 17분 45초 류승우(레버쿠젠)가 추가 골을 넣었다.
1분 45초 사이에 3골을 몰아넣었다. 한국 축구사에서 국제경기 최단 시간 3득점 기록이다.
장현수는 기자들에게 “후반전에 선수들이 침착함을 되찾고 냉정하게 경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 감독님 때문”이라며 “전반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신 감독은 혼을 내는 것보다는 독려와 위로를 해주셨다”고 말했다.
장현수는 이 같은 신 감독의 리더십을 ‘해피바이러스’라고 표현한 뒤 자리를 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