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학자가 본 ‘아바타’

불교학자가 본 ‘아바타’

입력 2010-02-10 00:00
수정 2010-02-10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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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환경이 파괴되고 자원이 고갈되었을 때 인간은 판도라 행성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언옵테이늄’이라는 엄청난 고가의 광물이 가득했다. 문제는 그것이 ‘나비족’이 살고 있는 거대한 나무 밑에 매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광물을 얻자면 그들을 이주시키거나 몰아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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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서재영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
협상을 위해 나비족과 인간의 유전자(DNA)를 합성한 ‘아바타’가 만들어졌지만 협상은 더뎠고, 자본의 지배를 받는 용병들은 가공할 무력을 앞세워 나비족을 공격한다. 하지만 판도라의 생명들은 인간의 침략을 막아내고 생태계의 균형을 지켜낸다는 것이 아바타의 줄거리다.

판도라 행성은 울창한 원시림이 살아 있고, 모든 존재는 영적으로 충만해 있다. 식물의 뿌리는 마치 신경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받는다. 모든 개체는 전체와 네트워크를 이루고 대지의 여신 ‘에이와’의 섭리에 따라 조화와 균형을 유지한다. 이처럼 전체와 개체의 조화로운 관계성을 화엄에서는 법계연기(法界緣起)라고 한다. 모든 존재는 상호관계 속에 있으며, 관계에서 단절된 개체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空)이다.

그러나 인간은 허망한 개체의 실체를 믿고 그것에 집착하며 언옵테이늄을 소유하려 한다. 그런 인간을 향해 나비족은 꿈꾸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전체의 가치를 보지 못하고 허황된 환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광물은 전체적 균형의 일부이며, 전체에서 그것을 분리할 때 판도라는 파괴된다.

따라서 전체와 하나일 때는 분리되지 않았으므로 소유할 수 없고, 전체에서 분리될 때는 가치의 지속성이 상실되므로 그것은 언옵테이늄(Unobtainum), 즉 ‘얻을 수 없는 물질’이 된다. ‘금강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이 얻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은 불가득(不可得)인 셈이다. 존재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어우러지는 나눔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것을 얻고자 지구를 황폐화시켰다. 자원에 집착하며 대지를 약탈한 결과, 생태계의 균형은 파괴되고 지속 가능성은 단절되었다. 인간은 판도라에서 그 같은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며 패배를 자초한다.

판도라의 상자에는 희망이 남아 있다. 인간은 판도라에서 언옵테이늄을 보고 희망을 발견한다. 하지만 진짜 희망은 조화와 균형 속에 유기적 전체를 유지하고 있는 건강한 자연이다. 그것이야말로 인류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서재영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
2010-02-1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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