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출간 이래 상승… 3주째 출판 2위
어른들을 위한 색칠놀이 책 ‘비밀의 정원’이 가을 출판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취미·실용 분야로 분류된 책은 지난 8월 20일 출간된 이래 2주 만인 9월 첫째 주 베스트셀러 20위(한국출판인회의 집계)를 시작으로 매주 상승해 10월 들어선 3주째 종합 순위 2위를 지키고 있다. 반디앤루니스와 알라딘 주간 종합 순위에서는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을 낸 퍼블리싱컴퍼니 클에 따르면 18일 현재까지 6만 5000권이 팔려 나갔고 여전히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가에서, 그것도 글자 하나 없는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어른들을 위한 안티 스트레스 컬러링북 ‘비밀의 정원’ 그림 전시회를 열고 있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북카페 그리다꿈에서 19일 젊은 여성 고객들이 색칠을 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비밀의 정원’은 스코틀랜드의 일러스트레이터 조해너 배스포드가 검은 먹을 주로 이용해 그린 세밀한 밑그림에 색을 입혀 그림을 완성하는 색칠놀이 책이다. 배스포드의 섬세한 그림에 관심을 보인 영국의 로렌스킹 출판사가 컬러링북 출판을 제의하며 책으로 내 큰 인기를 끌었고 프랑스, 미국, 스페인 등에 이어 14번째로 한국에서 출간됐다.
이 출판사의 박정우 마케팅팀장은 “외국 도서를 검토하던 중 컬러링북이 각광받고 있는 것을 보고 영국 출판사와 계약하고 출간하게 됐다”면서 “한국 시장의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초판 2000부가 사흘 만에 동나고, 2쇄 3000부는 출간 즉시 매진됐다. 그다음 5000부씩 인쇄하다가 지금은 2만부씩 인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밀의 정원’ 책 표지(위)와 색칠된 그림들(아래).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데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우선 ‘안티-스트레스 컬러링북’이라는 확실한 콘셉트가 제대로 적중했다. 박 팀장은 “세밀한 밑그림에 색연필과 펜으로 그림에 색을 입히는 동안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일상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동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거나 아이들 때문에 자기 시간을 내기 힘든 젊은 층 주부 등이 스트레스 해소 방안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기계에서 느끼는 피로감 없이 노력을 들인 보람을 즉각 보상받을 수 있다는 아날로그적 성취감 또한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인기의 결정적인 요인은 SNS다. ‘비밀의 정원’을 체험한 독자가 공들여 완성한 그림을 찍어서 SNS에 올리면 이를 보고 재구매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사진, 동영상 중심의 SNS 인스타그램에서 비밀의 정원 태그는 3000여개에 이른다. 책의 소비층은 여성이 80%로 월등하며 그중 대부분은 유행에 민감한 20~30대 여성이다.
파급효과도 만만치 않다. 미술치료, 아트세러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크리에이티브 테라피 컬러링북’(한스미디어) 등이 잇따라 출간돼 컬러링북 붐이 일어날 조짐이다. 불황에 울상이던 고급 색연필 시장도 덩달아 화색이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이나 화방에서 색연필과 책의 묶음 판매 상품을 내놓는 등 판매 촉진 마케팅을 하는 덕분에 독일산 고급 색연필 파버카스텔은 최근 두달 사이 창고의 재고가 바닥날 정도로 매출이 늘었다. 주요 고객층이 포진한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의 한 북카페 그리다꿈에서는 ‘비밀의 정원’ 그림들을 중심으로 한 전시회도 열고 있다.
이 책의 인기에 대해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활자 중심의 책이 이제는 대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책도 이미지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고, 읽고, 느끼는 다양한 형태로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책들이 하나둘씩 소개되는 것은 눈여겨볼 현상”이라고 말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4-10-2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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