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살배기 외손녀’ 탄 유모차 밀며 완주, 칠순 축하 위해 동호회원 10여명 참여
“삶의 첫발을 내딛는 손녀에게 인생에 비유되는 마라톤을 경험시켜 주고 싶었어요.”박순희(59·여)씨는 19일 올해 최연소 참가자로 17개월 된 외손녀 김민서양을 태운 유모차를 밀며 5㎞ 코스를 완주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19일 열린 서울신문 하프마라톤대회에서 최연소 참가자인 김민서양을 유모차에 태운 외할머니 박순희씨가 5㎞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며 환하게 웃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박씨는 이날 마라톤에서 달리기가 빠른 딸과 사위를 먼저 보내고 홀로 유모차를 밀었다. 오르막길에서는 숨이 턱까지 차서 걷기도 했다. 5㎞를 달리는 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결승선으로 들어오는 박씨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박씨는 “비가 조금씩 와서 민서를 제대로 걷게 하지 못해 아쉽지만 어떻게 보면 삶이라는 마라톤을 완주하는 시점에 아이와 함께할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면서 “아이도 당장 기억이 나지는 않겠지만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본다면 좋은 추억과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원 중 한 명이 칠순을 맞아 이를 축하하기 위해 참여한 동호회도 있었다. 매주 수요일 남산 일대를 달리는 마라톤 동호회 ‘남대문 마사모’ 회원 10여명은 지난 18일 칠순을 맞은 회원 유연상(70)씨를 위해 ‘축 유연상님 고희 기념’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10㎞ 코스를 유씨와 함께 달렸다. 깃발엔 유씨의 사진도 커다랗게 넣었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7년째를 맞은 유씨는 10㎞ 코스를 1시간 7분대에 주파했다. 그는 “이제 나이가 들어 10㎞ 이상은 못 뛰지만 1시간 10분대를 목표로 뛰었는데 그보다 기록이 잘 나와 기쁘다”며 “내년 대회에도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회에서 최고령 참가자였던 이종태(89)씨는 올해도 5㎞ 코스에 참가해 2년 연속 최고령 참가 기록을 세웠다. 그는 “슬슬 걷다가 뛰다가 하니까 5㎞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 풀코스는 못 뛰겠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매일 아침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관리한다. 동네 친구들과 20~30분씩 걷는 운동으로 몸을 풀고 나서 맨손 체조와 수영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이씨는 “지난해에도 이 대회에서 최고령 참가자로 뛰었는데 올해도 역시 최고령 참가자라고 해 뿌듯했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2013-05-2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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