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파업 결의했지만 찬반투표·참여율 ‘산너머산’

의협 파업 결의했지만 찬반투표·참여율 ‘산너머산’

입력 2014-01-12 00:00
수정 2014-01-12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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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의-월급의사 원격의료·영리사업 등 시각차

정부의 현 의료 정책에 반발하는 의사들이 결국 자신들의 본업이자 소명인 ‘진료’까지 거부하는 가장 극단적 투쟁 방법을 택했다.

아직 대한의사협회(의협) 소속 전체 의사들의 투표 절차가 남아있지만, 만약 과반 이상의 동의를 얻어 예정대로 3월초 파업이 실행되면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약 14년만에 의사들의 집단 휴ㆍ폐업이 재연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의협이 내세운 파업 명분 가운데 ‘낮은 의료수가(의료서비스 대가)’를 제외한 ‘원격의료’나 ‘의료법인 자법인 허용’ 등의 경우 개원의사와 종합병원 등에 소속된 의사의 입장이 달라 파업 참여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파업 규모가 작더라도 보건의료 서비스 공백이 불가피한 만큼 정부는 실제 파업 돌입 전까지는 의료계에 협의체를 통한 수가 개선 등 현안 논의를 계속 제안하고, 파업이 시작되면 업무개시 명령 등을 통해 ‘법대로’ 엄격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 향후 의사 9만5천명 파업 찬반 투표 거쳐야

일단 12일 새벽 의협 비상대책위원회가 발표한 향후 투쟁 방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조건부 파업’이다.

11일 오후 5시부터 서울 용산구 이촌로 의협회관에 모인 의협 임원, 각 시·도 의사회 임원, 시·군·구 회장 등 대표급 500여명은 이날 새벽 1시께까지 8시간이상 회의 끝에 “파업일을 3월 3일로 결정하되 정부 입장 변화에 따라 유보될 수 있다”고 밝혔다.

파업 예정일까지 한달 보름여동안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 원격의료 도입 관련 의료법 개정안(작년 10월 입법예고·12월 수정) 국무회의 상정 중단 ▲ 투자활성화 대책에 포함된 의료법인 자법인 허용 등 수정·철회 ▲ 저수가 등 건강보험 구조적 문제 논의 등의 요구 사항에 진척이 있으면 실제로는 파업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최종 파업 실행 여부는 정부와의 협의 결과 뿐 아니라 의협 내부적으로도 전체 회원의 투표 결과를 지켜봐야한다. 모바일이나 우편을 통해 9만5천여 전체 회원의 의사를 물어 동의가 적어도 절반은 넘어야 파업이 가능하다.

파업 유보 여부 결정, 회원 전체 파업 투표 일정 등은 차후 모두 의협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정하게 된다.

◇ 의협 내부서도 원격의료·투자활성화 입장 갈려…”2000년보다 파업참여율 낮을 것”

이처럼 14년만의 대규모 의료 파업이 실행에 옮겨지기까지는 일정과 절차상 아직 변수와 불확실한 요소들이 많다.

개원의·봉직의·전공의 등 가릴 것 없이 회원들이 한 목소리로 파업을 원할 정도로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불만이 절정에 달했다는 게 의협 집행부 등의 주장이다.

그러나 현재 의협이 내건 파업 명분이나 의협 회원 구성 등으로 미뤄 실제 회원들의 적극적 파업 참여는 물론 그에 앞서 파업 승인 투표 통과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12일 의협회관에서 안과의사인 임동권씨는 “대책 없는 파업 결정 반대한다. 원칙 없는 파업 결정 노환규 회장은 사과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브리핑장에 들어와 1인 시위를 벌인 점은 단적인 예. 임씨는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쓰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회원들에게 내용이 정확하게 전달이 전혀 되지 않았다”면서 “나처럼 파업결정에 반대하는 회원은 많이 있다고 믿으며, 어제 회의에서도 강성 발언 위주로 지지를 받아 이같은 입장이 제대로 표출되지 못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환규 의협회장조차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파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꽤 있어 투표하면 어느 한 쪽으로 절대 다수가 원하거나 반대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굳이 예상하라면 파업 강행 의사가 더 우세할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전망을 밝혔다.

현재 9만여 의협 회원 가운데 3분의 1은 직접 의원 등을 경영하는 개원의, 또 다른 3분의 1은 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 등에 고용돼 월급을 받는 의사(봉직의)들이다.

정부와의 갈등 요인 가운데 ‘저수가’ 문제의 경우 의사들 사이에 큰 이견이 없다. 개원의나 봉직의 가릴 것 없이 자신들이 제공한 의료 서비스에 비해 건강보험이 지급하는 대가, 즉 의료수가가 너무 낮다며 ‘현실화’, 즉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개원의들의 경우 지난 2011년 설문 조사 결과, 1천32곳 의원 가운데 68%가 현 건강보험제도에 불만을 드러냈고, 단 20%만 “현재 수입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의협이 또 다른 주요 파업 이유로 거론하는 원격진료와 의료법인의 영리 자법인 설립은 의사들 사이에서도 입장과 견해가 엇갈리는 부분이다.

대체로 개원의에게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관련 규제 완화는 혜택이 없거나 오히려 불리한 변화이다. 일단 지금은 의원급으로 원격진료 가능 기관을 제한하고 있지만, 점차 규제가 풀리면 결국 원격진료 시설 투자 여력이 충분하고 장기 관리가 필요한 수술 건이 많은 대형 병원들에 더 환자가 몰릴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종합병원 등 대형 병원 소속 의사들로서는 ‘대면 진료’ 등의 원칙적 명분만 아니라면 딱히 반대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의료기관의 영리 자법인 설립도 병원 소속 의사들로서는 기회가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자법인의 수익이 모법인인 의료기관으로 더해지면 소속 의료진의 처우가 개선될 수도 있고, 자법인의 부대사업으로서 의료 신기술 연구·개발(R&D)이 활발해질 가능성도 있다.

병원의 자회사를 통한 영리 사업을 ‘의료 민영화’로 해석하는 시각과 의협이 그 편에서 파업을 결정했다는 분석에는 의협 쪽도 ‘난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노 회장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와 관련, 내부에 혼란이 있어 ‘의료 민영화 반대’라는 용어에 대해 가급적 말을 아끼고 있다”며 “진료보다 수익 창출이 우선되는 환경은 의사들도 당연히 반대하지만, 진료를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수익이 창출되는 환경은 조성돼야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병원들에 건강보험 가입 환자를 의무적으로 진료하고 국가가 정한 금액만 받도록 하는 현행 우리나라 보건의료체제의 근간이다.

따라서 이 같은 의협 내부 분위기로 미뤄, 현 시점에서 파업이 확정되더라도 2000년 의약 분업 사태 당시처럼 의사들 대부분이 청진기와 메스를 놓는 이른바 대규모 ‘의료대란’으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한 대학병원 소속 전문의는 “2000년에는 개원의들의 초기 파업 참여율이 90%를 웃돌았고, 이후 대학병원 소속 의사들까지 외래를 휴진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의협 차원에서 파업이 결정되더라도 의사들의 의견이 다양해 그 때만큼 참여율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협 지도부가 당초 파업 시점을 구정 연휴 직후인 2월초로 검토하다 3월로 미룬 것이나 정부와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도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 아니냐는 해석이다. 현 정부의 영리병원 추진 정책을 집중 공격하는 야당 안에서조차 의료 파업에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점도 의협 입장에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다만 노환규 의협회장은 “정부가 원격의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의 국무회의 상정을 강행한다면 2월 중에라도 반나절 휴진, 비상총회 개최 등도 고려할 것”이라며 꼭 총 파업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 정부 “원격의료 보완·수가 개선 등 논의 용의”…업무개시명령 어기면 징역·벌금

이 같은 의료계 파업 움직임에 대응하는 정부의 원칙은 “대화 노력은 계속하되, 실제로 파업에 들어가면 법에 따라 엄중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3일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의료계 신년 하례회를 찾아 “원격의료와 투자활성화 대책, 저수가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 가입자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원격의료 보완, 수가 구조 개선, 수가 결정 체계 개선 등을 모두 포함해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의료계의 숙원인 ‘수가 현실화’와 관련해서는, 문 장관까지 직접 “과거 제가 공부한 바로도 의료수가가 충분하지 않다고 알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수긍하는 분위기이다.

다만 현재 수가 부족분이 비급여를 통해 보전되고 있는 만큼, 수가 인상만을 논의할 수는 없고, 비급여 부분을 건강보험 급여로 편입해 보장성을 늘리는 방안 등과 함께 얘기돼야한다는 게 정부측 입장이다.

하지만 이날 파업 출정식에서 의협측은 정부가 제안한 민-관 협의체 구성을 거부했다. 정부와 의료계 뿐 아니라 노동계 등 건강보험 가입자 대표까지 참여할 경우, 현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과 마찬가지로 구도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해석된다.

의협 지도부가 새로운 협의체 구성을 제안키로 한 만큼 정부는 일단 의협의 제안을 토대로 대화 채널이 가동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만약 끝까지 협의체 구성이 무산되고, 파업이 현실로 바뀌면 정부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호하게 업무개시 명령 등 공권력을 행사할 방침이다.

현행 의료법 59조는 “복지부 장관 또는 시·도지사가 보건의료 정책을 위해 필요하거나 국민건강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명령을 거부하면 ‘3년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미만 벌금’형까지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0년 6월 의사들이 의약분업에 반대하며 집안 휴업했을 때, 복지부 장관은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정부는 현재 의협이 문제 삼고 있는 원격의료 도입, 의료법인 자법인 허용 등의 정책을 물릴 의사도 전혀 없다. 원격의료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장애인, 도서벽지 거주자, 만성질환자 등의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고, 의료법인 자법인 허용 역시 모법인인 의료법인의 지배구조 개편과는 무관한 규제 완화인만큼 의료 공공성 등을 전혀 훼손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앞서 10일 이미 정부는 이영찬 복지부 차관 주재로 보건의료 투자 활성화 실행계획 수립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고 실무 차원에서 구체적 실행 방안까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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