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기업대출이 두렵다”…지난해 부진 이어 더 위축될 우려
동부건설, 대한전선, 모뉴엘 등 최근 잇따른 기업 부실로 인한 은행들의 손실이 한달새 무려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이에 따라 지난해 증가율이 3%에도 미치지 못했던 기업대출이 올해에는 더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엔저와 경기침체 여파로 가뜩이나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중견·중소기업들의 대출난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동부건설의 법정관리 신청, 대한전선의 분식회계로 인한 채권단 보유주식의 폭락, 무역보험공사의 모뉴엘 보험금 지급 거부 등으로 시중은행들이 입은 손실은 한달새 무려 1조원에 육박한다.
우선 새해 벽두부터 터져나온 동부건설의 법정관리 사태로 인해 은행권의 회수가 어려워진 대출금이 2천억원을 넘는다.
금융기관의 동부건설 대출금은 총 2천618억원에 달하는데,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은행들은 담보 없는 대출의 100%는 물론 담보대출의 상당부분도 회수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충당금을 쌓는다. 이는 고스란히 은행의 순손실로 이어진다.
더구나 동부건설의 협력업체가 1천713개사, 거래액도 3천179억원에 달한다. 동부건설의 법정관리로 어음 등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협력업체들이 도산하면 은행은 이들에 대한 충당금도 쌓아야 한다.
동부건설의 법정관리 사태로 휘청하는 은행들에 또 하나의 악재가 터졌다. 바로 대한전선의 분식회계 사태다.
회수할 수 없는 매출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 것처럼 과대평가하는 등 분식회계를 저지른 대한전선에 대해 최근 증권선물위원회가 제재를 내렸다. 주식 거래는 정지됐고, 주가는 반토막 났다.
문제는 채권은행들이 2013년말에 대한전선 대출 7천억원 어치를 출자전환했다는 점이다. 은행들이 출자전환한 가격은 주당 2천500원에 육박하는데, 대한전선의 마지막 거래일 주가는 1천200원에 불과했다.
주가가 폭락한 만큼 은행들은 손실을 쌓아야 하는데, 증권가에서는 이 손실액이 2천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은행권에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 것은 무역보험공사의 모뉴엘 보험 지급 거부 결정이다.
은행들이 모뉴엘에 빌려준 돈은 모두 6천768억원인데, 은행들은 신용대출만 받을 수 없을 뿐 무역보험공사가 지급을 보증한 3천265억원은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 무역보험공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기 때문에 이 금액도 고스란히 손실로 처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은행권은 이들 3개 사와 동부그룹 계열사, 협력업체들로 인한 손실액이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한다.
문제는 은행권만의 손실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중견·중소기업의 대출난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한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업대출 부문은 가시밭길을 걷는 것처럼 어렵다”며 “올해는 우리가 잘 아는 거래기업에만 신규 대출을 해주고 다른 기업들에 대한 대출은 최대한 신중하게 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의 여신관리부장은 “모뉴엘 사태로 무역보험공사가 보험 지급을 거부하고 소송까지 가게 된 상황이어서, 은행 입장에서는 앞으로 비슷한 여신에 대해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견·중소기업들 입장에서는 걱정이 태산 같다. 그렇지 않아도 엔저와 세계 경기침체 등으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데, 은행들이 돈줄마저 죄면 ‘흑자 도산’ 등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에도 은행들이 가계대출에 집중하면서 중소기업 대출은 전년 대비 2.8% 늘어나는데 그쳤는데, 올해는 대출난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최복희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모뉴엘 사태 등으로 은행에서 중소기업 대출을 우선 축소하거나 조기 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며 “올해 경기전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금융당국에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