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통화완화 국가 11개국…”원화 추이가 핵심 변수”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도미노식으로 퍼지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물가상승률이 0%대에 머물면서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압력이 한층 커지고 있다.특히 ‘환율전쟁’ 확산에 따른 향후 원화 환율의 추이가 한은의 결정을 좌우할 핵심 변수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호주중앙은행(RBA)이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하면서 올해 들어 벌써 11개국이 통화완화에 나섰다.
앞서 루마니아·스위스·인도·페루·이집트·덴마크·터키·캐나다·러시아가 금리를 낮췄고, 싱가포르는 싱가포르달러 가치의 절상을 늦추는 방식으로 통화완화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싱가포르에 이어 호주까지 통화완화에 착수하면서 환율전쟁이 아시아로 퍼지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상훈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통화완화 조치를 취한 국가 대다수가 시장 예상을 뛰어넘어 전격적·선제적으로 움직였다”며 “이제는 중국의 통화완화 여부가 주목된다”고 밝혔다.
전날 발표된 1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전년 동기 대비 0.8%로 2개월 연속 0%대를 나타내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1월에 담뱃값 인상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승효과가 있었는데도 이 정도 수치가 나왔다는 사실이다.
통계청은 담뱃값 인상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승효과를 약 0.58%포인트로 분석하고 있어 이를 제외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22%에 그친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대다수 국내외 증권사들은 한은에 대해 금리 인하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관측했다.
서대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1월 소비자물가는 담뱃값 인상 영향을 제외하면 전월보다 하락했다”며 낮은 물가 상승률과 내수 회복 지연 등을 고려하면 금리 인하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마크 월튼 BNP파리바 이코노미스트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이처럼 낮은 적은 처음”이라며 내수 부진과 세계 경제의 ‘역풍’을 반영해 3월과 2분기 주에 각각 한 차례씩 두 차례, 0.5%(50bp)의 금리 인하를 예상했다.
특히 앞으로 원화 환율 흐름이 금리 인하 여부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하이투자증권의 박상현 투자전략팀 상무·이승준 연구원은 호주의 금리 인하 등으로 국내 금리 인하 요구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은 “원화 가치가 대다수 주요국 통화에 비해 강세여서 수출 경쟁력에 부담이 되고 있다”며 “원화가 환율전쟁에서 자칫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정책 당국의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김지만·박종연·허은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나, 원화 가치가 아직 안정적이어서 한은이 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원자재 가격 하락이 경기 둔화 압력으로 작용하는 호주와 한국은 경제 구조가 다르다”며 “중요한 것은 통화전쟁으로 원화 절상 압력이 얼마나 심해지느냐지만, 원화 절상이 가팔라지지 않는 한, 한은은 기존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진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대내외적 금리 인하 압력에 늦어도 4월까지 한 차례 금리를 인하하지만 원화는 중장기적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앞으로 유가 하락의 긍정적 효과가 가시화해 세계 금융시장에서 위험선호 성향이 커지고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신흥국 내 양극화가 심화하면 거시경제 안정성이 뛰어난 원화 자산의 매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한은의 예상 금리 인하폭(0.25∼0.50%포인트)도 다른 주요국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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