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우위 여전, 언제든 2차 하락 가능유가상승·정제마진 개선…정유사 ‘숨통’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작년 11월27일(현지시간) 산유량 감산불가 방침을 발표하면서 촉발된 저유가 전쟁이 지난 주말로 100일을 넘었다.1월 중순 배럴당 40달러대 초·중반까지 폭락했던 국제 유가는 1월 말부터 상승세로 전환하더니, 한 달째 배럴당 50∼60달러선 주변에서 등락하고 있다.
저유가 전쟁은 현재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원유 수요 대비 공급 우위 상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 2차 하락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 사우디 ‘저유가 게임’ 효과 있나 = 미국은 원래 원유 수입국이었다. 하지만, 셰일혁명으로 불리는 기술 개발로 셰일층에 갇혀 있는 기름을 뽑아내면서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생산능력을 거의 따라잡았다.
원유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경기 침체로 수요가 줄자 유가는 하락세를 탔고, OPEC 회원국들은 산유량을 줄여 가격을 끌어올리는 시도 대신 ‘감산 불가’ 방침을 발표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 산유국들은 생산량을 줄이더라도 그만큼 셰일오일이 늘면 자신들의 시장 점유율만 줄고, 가격도 못 지킨다고 판단해 ‘저유가 치킨게임’을 선포한 것이다.
유가는 무서운 속도로 폭락해 1월 중순 두바이유는 배럴당 42달러선,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와 브렌트유는 각각 45달러선과 46달러선에 거래됐다.
이후 보합세를 보이다 1월 말부터 상승해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60달러선 안팎에서, 두바이유는 60달러선 밑에서,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50달러선 안팎에서 등락하고 있다.
1월 말부터 유가가 오르는 데 가장 영향을 미친 요인은 미국의 오일·가스 시추기(리그) 수가 줄고 있다는 소식이다.
리그 수는 작년 11월 말 1천917개에서 올해 2월 말 1천267개로 저유가 전쟁이 벌어진 석 달 동안 34% 감소했다.
또, 국제석유 기업들이 올해 신규 투자를 대폭 축소하고 고비용 프로젝트의 연기 또는 취소, 구조조정에 나섰다는 소식과 리비아의 유전을 무장세력이 장악했다는 소식 등 정정불안, 미국 정유업계의 역대 최대규모 파업이 유가 상승에 일조했다.
◇ 공급 우위 여전…2차 하락할까 = 전문가들은 ‘저유가 전쟁’의 핵심이 석유 공급과 수요 불균형인데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유가가 과거처럼 배럴당 100달러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언제든 2차 하락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리그 수가 줄고는 있지만 가동이 중단된 리그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곳이 대부분이고, 오히려 남은 리그의 생산성은 계속 향상돼 미국의 산유량 감소로 아직 이어지지 않았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 내 셰일오일·가스 수평정 시추기 1개당 평균 생산량은 4년 전보다 156% 증가했다.
특히 셰일오일은 유가가 상승하면 시차를 두지 않고 곧바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고, 중·소형 셰일오일사들이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우면 중동 산유국에 대한 대항력 역시 커진다.
대형 석유기업들도 긴축속에서도 생산 효율성 강화와 핵심자산 집중을 통해 올해 생산량 증대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올해 14%, 미국 코노코필립스 2∼3%, 미국 콘티넨털리소스 16∼20%, 미국 셰브론 최대 3%의 생산량 증대 목표를 내놓았다.
무엇보다 저유가 때문에 러시아·이란·베네수엘라·나이지리아 등이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고 하지만, 이들 산유국 역시 생산량 감축 결정을 내린 곳은 어디도 없다.
일각에서는 석유회사나 대형 원유 트레이딩 기업들이 기름 값이 오를 것으로 보고 사재기한 원유가 점차 늘어나 저장능력을 넘어서면 다시 한 번 가격이 급락하고, 이것이 사우디아라비아의 2단계 작전이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사재기성 비축유가 지난해 2억6천500만 배럴로 추정되며 유럽과 아시아의 저장시설 용량 중 80∼85%는 이미 꽉 차 있는 상태다.
문영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은 “수요 대비 공급 우위 상태가 지속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급락, 급등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배럴당 70∼80달러선이 새로운 균형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유가상승·정제마진 개선…정유사 ‘숨통’ = 국내 주유소 역시 1월 말까지는 최저가 경쟁을 벌였다.
휘발유를 ℓ당 1천245원에 파는 주유소까지 생기는 등 1천200원대 주유소가 130여곳까지 늘었고, 휘발유 전국 평균값은 1천409원(2월5일)을 찍었다.
하지만, 국제 유가가 상승세로 바뀌면서 한 달 연속 휘발유 값이 올라 9일 현재 ℓ당 1천501원이 됐다.
소비자들은 “내릴 때는 천천히, 오를 때는 눈 깜짝할 사이”라며 ‘콧물 같은 기름값’이라고 불만을 나타낸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는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는 분위기다.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3사의 지난해 정유부분 영업손실은 2조6천억원, 전체 영업손실은 9천억원이었다.
원유 운송에는 한 달 가까이 걸리는데 작년 4분기 석 달 동안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40달러나 폭락하면서 발생한 재고평가 손실이 가장 큰 적자 원인이었다.
그런데 유가가 최근 한 달간 배럴당 10달러가 오르면서 재고평가 가치가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아울러 미국 정유업계의 파업, 정유사들의 정기 유지보수 시즌 돌입 등으로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국내 정유사의 수익성 지표가 되는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도 상승했다.
지난해 평균 5.88달러에서 올해 1월 7.4달러, 2월 8.8달러, 3월 들어 9달러대로 올랐다.
복합정제마진은 고도화시설을 거친 석유 제품값에서 원유가·운임·정제비용을 뺀 정유사의 이익을 뜻한다.
정유사 관계자는 “유가가 언제든 다시 하락할 수 있기 때문에 설비 가동률을 올리고, 정기보수 일정도 최대한 늦추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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