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미생, 간접고용] “일상이 타박”… 간접고용 노동자 절반 이상 우울·불안증세

[또 하나의 미생, 간접고용] “일상이 타박”… 간접고용 노동자 절반 이상 우울·불안증세

이성원 기자
입력 2015-03-10 02:24
수정 2015-03-10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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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되는 정신건강

“하루하루가 타박이에요. 인간 취급을 안 하는 거 같아요. 50대 동료 한분이 허리가 아파서 며칠 만에 출근했는데 30대 관리자가 ‘다음에 또 이러면 그만둘 생각을 하라’며 몰아세우는 거예요. 지켜보는 우리도 천불이 나는데 그분은 연신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하시더라고요.”(경기 시화반월공단 20대 간접고용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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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고용 노동자 2명 중 1명은 ‘우울하다’고 생각하거나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 9일 서울신문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간접고용 노동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우울 또는 불안장애를 겪었다’라는 문항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53.9%였다. 이 가운데 66.6%는 원인으로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답했다.

불면증을 겪는 간접고용 노동자도 55.9%에 달했다. 이 가운데 65.7%가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답했다. 2011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경제활동인구를 대상으로 한 ‘근로환경조사’에서는 1.6%만 우울증을 호소했다.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응답 역시 2.7%에 그쳤다. 일상적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정신적 고통을 짐작하게 한다.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위원은 “간접고용 노동자는 늘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린다”며 “불투명한 미래와 궁핍한 생활이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인아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스트레스 수준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라며 “다만 정신질환이 있다거나 자살 위험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요통(63.9%), 어깨·목·팔 등의 근육통(88.6%), 두통, 눈의 피로(78.3%), 심혈관 질환(18.1%) 등의 육체적인 문제보다는 정신 피로(89.7%)를 호소한 응답자가 많았다.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정도도 심각했다. ‘업무에서 스트레스를 받느냐’는 질문에 85.1%가 ‘그렇다’고 답했다. 2011년 공단의 근로환경조사에서는 26.1%가 ‘업무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간접고용 노동자 3명 가운데 1명(30.4%)은 ‘지난해 업무 중 당한 부상으로 4일 이상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지난 2주일간 즐겁고 기분이 좋았다’는 항목에 부정적으로 답변한 이들은 73.1%였다. 또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했다’는 항목에도 73.4%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나의 일상은 흥미로운 것’이라는 항목에서는 ‘그런 적 없다’(43%)는 답이 가장 많았고, ‘나는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났다’는 항목에서 ‘그런 적 없다’(50.9%)가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점 또한 간접고용 노동자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방증이다. LG유플러스 설치기사 최모(46)씨는 “명절에 가족끼리 식사하고 있는 고객의 집을 방문해 인터넷 설치를 할 때면 ‘나는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지도 못하고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고객과의 약속 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항상 시간에 쫓겨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도 컸다. 특히 관리자의 비인격적인 대우가 문제였다. ‘직속상관이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는가’라는 물음에 ‘아니요’라는 응답이 73.4%였다. ‘상사가 도와주고 지지해 준다’는 항목에 대해 부정적인 응답이 65.5%였다. 다만 ‘동료는 도와주고 지지해 준다’ 항목에선 긍정적인 답변이 50%였다. 숭실대 청소노동자 장보아(61)씨는 “청소반장이 부당하게 용모를 지적하는 등의 행태를 보였을 때 반박을 하면 말대꾸한다고 몰아세워 소통할 방법이 없다”면서 “관리자와의 갈등으로 결국 사직서를 제출한 동료도 많다”고 밝혔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은 결국 술과 담배였다. 설문에 응한 간접고용 노동자 가운데 62.7%가 흡연자로 조사됐다. ‘일주일에 2~3회 이상 술을 마신다’는 응답자가 27.1%로 가장 많았고 ‘4회 이상 마신다’는 이들도 19.9%에 달했다. 1회 음주량도 ‘소주 10잔 이상 마신다’고 답한 이들이 31.5%로 가장 많았다. 반면 경제활동인구를 대상으로 한 근로환경조사에서 흡연자는 33.2%로 간접고용 노동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또 일주일에 4회 이상 음주를 한다는 응답은 4.9%, 2~3회라는 응답은 21.4%였다.

한 연구위원은 “주로 서비스산업 노동자가 설문에 참여해 감정노동 수치가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비해 현격히 높게 나온 것 같다”면서 “상당수 고객이 이들을 비전문직으로 하찮게 여기고 있어 열악한 상황이 더 심각하게 나타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설문조사 어떻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도움으로 주로 서비스업계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 1241명(정규직 29.3%, 비정규직 70.7%)을 대상으로 지난달 8~22일 인터넷 조사 사이트 ‘서베이몽키’를 통해 실시했다. 간접고용 노동 실태를 국내 평균 노동 실태와 비교하기 위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3년마다 경제활동인구 5만여명을 대상으로 벌이는 근로환경조사를 바탕으로 문항을 설계했다.
2015-03-1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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