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삼성물산 분쟁 법정비화… ’고강도 장기전’ 가나

엘리엇-삼성물산 분쟁 법정비화… ’고강도 장기전’ 가나

입력 2015-06-09 15:39
수정 2015-06-0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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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기를 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9일 법정으로 싸움을 끌고 가면서 삼성그룹을 향해 본격적인 포문을 열었다.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선 엘리엇이 과거 다수의 투자 사례에서 송사를 불사하는 ‘행동주의’ 성향을 보여온 만큼 삼성그룹과도 ‘고강도 장기 공방’을 벌여나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엘리엇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 주주총회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내달 17일 개최될 임시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을 결의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것이다.

엘리엇은 “합병안이 명백히 공정하지 않고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며 불법적이라고 믿는 데 변함이 없다”며 가처분 신청이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삼성물산에 대한 공세의 명분을 한껏 강조하는 것으로 동조 세력에 결집 시그널을 발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엘리엇이 합병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내달 합병을 위한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3분의 1 이상의 반대표를 모아야 한다.

엘리엇의 이번 가처분 신청은 사실상 예고된 수순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일각에선 엘리엇의 가처분 신청은 ‘장기 장외 전쟁’을 불사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엘리엇은 충분히 공부하고서 싸움을 시작한 것”이라며 “주주로서 상법상 제기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사태를 장기전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주총에서 엘리엇이 진다고 해도 주주총회 결과 무효 확인 소송을 다시 제기하거나 내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등을 추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엘리엇이 미국 등 해외에서 소송전을 병행하거나 국내 법원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카드를 들고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ISD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대상 국가의 법령이나 정책으로 피해를 볼 경우 국제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한 분쟁해결 제도다.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투자보장협정(BIT) 체결 내용에 포함돼 국내법보다 우선한다. 특히 합병 비율 산정의 기준이 자산기준으로 돼 있는 다른 국가와 달리 국내에선 주가 기준으로 돼 있는 자본시장법을 문제로 삼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엘리엇이 분쟁을 일으켜 차익을 낸 뒤 빠지는 ‘먹튀’ 행보를 보일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에 서서히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엘리엇이 지난 4일 삼성물산 지분 공시부터 이날 가처분 신청에 이르기까지 보인 일련의 행보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엘리엇은 지난 4일 전격적으로 7.12% 지분 보유 사실을 공시하면서 국내 홍보 대행사를 동원해 보도자료를 내는 방식으로 요란스럽게 등장했다.

삼성물산에 현물 배당이 가능한 방식으로 정관을 개정해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내는가 하면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들에 합병 반대에 동참을 호소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계속 ‘재료’를 던지는 ‘살라미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다.

주주명부 폐쇄를 앞두고 이날까지 매수한 주식이 내달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이날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고 보도자료를 내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린 것도 시장에 심리적인 충격을 주기 위한 전술의 하나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법정 공방 등으로 장기화하면서 삼성그룹의 3세로의 승계작업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김 소장은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매입에 투입한 6천억∼7천억원을 몇 년씩 묻어둬도 상관이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면서 “10∼20%의 차익을 바라고 싸움을 시작했을 리도 없다”고 지적했다.

엘리엣의 자산규모는 290억 달러(29조원)에 이른다. 그는 “이번 합병 추진이 삼성의 승리로 끝나더라도 삼성의 승계와 지배구조 변경 등의 산적한 과제 추진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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