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기촉법 절차 준하는 ‘자율 운영협약’ 마련키로
금융감독원이 30일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 19곳을 추가로 선정했지만 법정 구조조정 수단 중 하나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서 효과적인 구조조정 추진에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의 근거법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연말 일몰을 맞지만 국회 공전으로 이 법의 연내 연장이 사실상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기촉법 실효에 따른 공백기간은 과거에도 두 차례 전례가 있었다.
그때마다 원활한 구조조정 추진에 차질이 있었다는 게 정부와 시장의 평가다.
금감원은 금융권 자율로 기촉법 절차에 준하는 ‘기업구조조정 운영협약’을 마련해 구조조정 업무의 공백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또 내년도 신용위험평가부터 평가 대상을 확대하는 등 현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신속한 ‘옥석가리기’가 가능하도록 은행권의 성과평가기준(KPI)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 기촉법 두 차례 실효 경험…구조조정 시장 혼란 재연 우려
금융권에서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본격화를 앞둔 시점에서 기촉법 공백에 따른 후유증이 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로 일몰 시한이 정해진 한시법인 기촉법을 상시화하고 내용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해 왔으나 개정안이 연내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법원 주도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비해 워크아웃은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수시 대기업 신용위험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11개 기업은 기존의 법정관리를 통해 구조조정이 진행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번 평가에서 C등급을 받아 워크아웃 대상이 되는 19개 기업의 구조조정 방안이다.
기촉법 공백으로 인한 구조조정의 차질은 과거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기촉법이 처음 실효됐던 2006년 1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현대LCD, VK, BOE하이디스, 현대아이티, 팬택, 팬택앤큐리텔 등 총 6개 기업이 자율협약을 통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 중 팬택 및 팬택앤큐리텔만 2009년 양사 합병으로까지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됐을 뿐, 나머지 4개사는 채권단 간 합의도출 실패로 시장 자율의 구조조정이 실패하고 법정관리로 넘어갔다.
기초법은 이후 재입법 됐으나 또다시 일몰로 2011년 1월부터 5월까지 2차 실효기간을 맞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시기여서 삼부토건, 동양건설 등 다수의 건설업체들이 자율협약에 들어갔으나 채권단 간의 비협조로 시장자율 구조조정이 무산됐다.
세광중공업, 월드건설 등 정상적으로 워크아웃이 진행 중이던 기업도 기촉법 실효 이후 워크아웃이 중단되면서 구조조정 시장에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 채권단 자율운영협약으로 법률공백 최소화 노력…“강제성 없어 한계”
금감원은 기촉법 실효에 따른 구조조정 업무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체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금융권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채권금융기관 자율의 기업구조조정 운영협약을 마련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운영협약을 토대로 기촉법에 준하는 절차를 그대로 적용해 나가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채권금융기관이 운영협약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뺌을 하는 경우 마땅한 강제수단이 없다는 것이 이 방안의 한계다.
기촉법은 채권비중 75%의 찬성만 있으면 구조조정 진행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지만, 협약은 채권기관 참여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이와 관련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17개 은행 여신 담당 부행장이 참석한 회의를 주재하고 “각 은행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협약이 신속하게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협약이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합리적인 근거 없이 기관 이기주의 행태를 보여 기업 구조조정에 애로가 발생하지 않도록 협조를 바란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2금융권 등 비은행권의 경우 업체 수가 다양하고 관리가 쉽지 않아 협약 참여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은행권의 경우 운영협약 참여가 비교적 원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만, 비은행권의 경우 협약 이탈기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렇게 되면 비협약채권자에 대한 부담을 협약채권자가 대신 져야 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촉법 1차 실효 기간에 채권단 간 합의도출 실패로 구조조정이 지연된 전례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 내년부터 신용위험평가 범위 확대…성과평가 체계도 개선
금감원은 실효성 있는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내년부터 정기 대기업 신용위험평가부터 평가절차를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신용위험평가 대상에 완전자본잠식 기업을 추가해 평가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는 최근 3년 연속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인 기업과 최근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 등이 대기업 신용위험평가 대상이 되고 있다.
워크아웃 개시 이후 기업의 영업력 훼손으로 정상화가 곤란해지지 않도록 보완방안도 강구한다.
워크아웃 개시 이후 채권단과 기업 간 정상화방안 협약(MOU) 체결 전까지는 기업 대 기업(B2B) 대출, 당좌대출, 할인어음 등 ‘한도성 여신’의 경우 채권신고일 현재 한도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일부 채권은행이 워크아웃 개시 결정 이후 한도성 여신의 한도를 인정하지 않고 기존 여신 공여 잔액 범위 내로 대출을 제한한 사례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또 은행권과 공동으로 성과평가기준(KPI)도 합리적으로 개선키로 했다.
은행 영업점의 성과평가가 나쁘게 나올 것을 우려해 기업 구조조정을 지점장이 재임 기간 기업의 부실 지정을 지연하려는 유인을 막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구조조정 추진에 따른 영업점의 평가 상 불이익을 구조조정 노력 정도를 감안해 경감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또 전임 지정장의 고의적인 구조조정 지연이 확인될 경우 추후에라도 성과평가에 불이익을 부과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양현근 금감원 부원장보는 “현재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KPI 개선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의견수렴 절차와 은행 내규 반영을 거쳐 내년 하반기부터 개선된 성과평가 체계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