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료 대신 장학금 1억…출시 10개월만에 점유율 두 배이상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왼쪽)과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오른쪽)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소주 처음처럼은 2006년 2월 두산주류BG(현 롯데주류)의 신제품 소주로 시장에 처음 선보였다.
2005년 가을께 신제품 개발을 마친 두산주류는 마지막으로 ‘이름짓기(네이밍)’에 골몰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 작업을 맡은 광고·홍보전문업체 ‘크로스포 포인트’의 손혜원 대표가 신영복 교수의 문구 ‘처음처럼’을 추천했다.
손 대표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네이밍 전문가로, 최근 새천년민주연합의 새 당명 ‘더불어민주당’을 만든 인물이다.
한기선 당시 두산주류 사장도 자신이 진로 부사장 시절 히트작 ‘참이슬’ 작명을 맡겼던 손혜원 대표의 역량을 믿고 ‘처음처럼’을 소주 이름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이 문구와 글씨체(쇠귀체)의 ‘주인’인 신영복 교수의 의중을 확인하는 절차가 남아있었다.
당시 두산주류에서 일했던 롯데주류 관계자는 “신 교수님이 존경받는 학자이신데, 과연 술 이름에 자신의 글을 사용하도록 허용할지 사실 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손 대표로부터 제의를 들은 신 교수는 의외로 흔쾌히 ‘처음처럼’ 문구·글씨체 사용을 허락했다. 그는 “가장 서민들이 많이 즐기는 대중적 술 소주에 내 글이 들어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마침내 2006년 2월 신 교수가 직접 쓴 ‘처음처럼’이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속 ‘새 그림’과 함께 소주병에 찍혀 세상에 알려졌다.
신 교수는 저작권료도 받지 않았다. 업체가 여러 차례 지불을 시도했으나, “나는 돈이 필요하지 않다”며 극구 사양했고, 결국 두산주류는 저작권료 대신 신 교수가 몸 담고 있는 성공회대학교에 1억원을 장학금 형식으로 기부했다.
갓 출시된 소주 ‘처음처럼’의 인기는 말 그대로 ‘돌풍’ 수준이었다.
두산주류의 이전 소주제품 ‘산’의 시장 점유율이 5%에 불과했는데, 2006년 2월 ‘처음처럼’이 나온 뒤 불과 10개월만인 2006년 12월 두산주류의 소주시장 점유율은 두 배이상인 12%로 뛰었다. 이후에도 처음처럼은 성장을 거듭해, 현재 시장의 18%를 차지하고 있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소주 처음처럼이 이처럼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데는 ‘처음처럼’에 담긴 고 신영복 교수님의 깊은 가르침과 친근한 이미지 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