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적을 친구로 만드는 정치/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시론] 적을 친구로 만드는 정치/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입력 2013-03-29 00:00
수정 2013-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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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적을 파멸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링컨의 말이다.

최근 링컨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졌다. 그가 노예제 폐지를 위해 수정헌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을 다룬 영화가 나왔기 때문이다. 영화는 노예제 폐지를 위한 수정헌법 통과가 반대자 혹은 이견자들에 대한 설득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비밀리에 브로커를 고용해 매수의 방법도 썼던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링컨은 반대자 혹은 이견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듦으로써 노예제 폐지를 위한 수정헌법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미국은 독립 후 국가 건설 과정 초기에 연방주의자와 반(反)연방주의자들 간의 반목과 갈등으로 심한 진통을 겪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워싱턴이 퇴임 연설에서 -그 갈등에 기초한- 정당정치는 장려되어선 안 된다고 할 정도였다.

워싱턴은 신생 국가가 안정적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통합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지만 연방주의자와 반연방주의자들의 갈등으로 큰 곤란을 겪어야 했다. 반연방주의자들에 의해 ‘연방주의자 정당의 앞잡이’라는 비판까지 받아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애를 먹었던 것이다.

연방주의자들과 반연방주의자들의 갈등은 결국 연방주의자들이 사멸함으로써 해소되었다. 제퍼슨과 매디슨 정부 시기를 거치면서였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연방주의자들의 소멸에 반연방주의자들의 연방주의 정책 ‘도용’이라는 전략적 실천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연방은행을 훨씬 거대하고 강력한 규모로 설립했다는 것이다. 물론 연방주의자들의 사멸에는 영국에 대한 전쟁 시도를 방해하고 프랑스에 대한 영국의 승리를 기뻐함으로써 국민들이 연방주의자들을 미국에 대해 불충한 세력으로 간주했던 것, 또 대중을 군중심리에 휘둘리는 존재라며 경멸한다고 보았던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결국 연방주의자들은 ‘적을 이길 수 없으면 적에게 가담하라’는 원칙에 바탕해 ‘화해의 시대’를 외치며 반연방주의자들의 진영으로 이동하였다. 고유한 정책도, 국민적 지지도 잃어버린 연방주의자들은 반연방주의자들의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민공화당과 휘그당이 있었지만 공화당이 만들어지고 링컨이 등장해 미국 정치를 다시 주도하게 될 때까지 수십년 동안 그러했다.

국가의 주요 정책일수록 좋은 정책이어야 한다. 그런데 정책은 반대자 혹은 이견자의 날카로운 공격을 견디고 이겨낸 것일수록 좋다. 반대자 혹은 이견자들과의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을 허용하는 민주주의의 장점이 여기에 있다. 토론과 논쟁은 때때로 지겨움을 느낄 정도로 기나긴 시간을 소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책은 그 시간을 겪음으로써 더 견고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토론과 논쟁을 필수요소로 하는 ‘민주주의는 시간을 먹고 자라는 정치체제’이기도 하다. ‘적을 친구로 만드는 시간’ 말이다.

처칠이 루스벨트와 회담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의 일이다. 비행장에 기자들이 나와 회담 내용을 알아내기 위해 질문을 던졌지만, 처칠은 기자회견을 하거나 회담 내용을 누설하지 않았다. 대신 처칠이 기자들을 향해 한 말은 이러했다.

“아니오, 그 문제라면 노동당의 애틀리와 의회에서 토론해야 합니다.” 의회와 정적에 대한 존중, 그리고 토론을 중시하는 그의 정치관과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경제와 안보가 어렵다. 토론과 논쟁보다 질서와 안정을 강조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질서와 안정은 물론이고 경제와 안보를 호전시킬 정책은 적을 친구로 만들어 내는 데 있지 않을까. 출범 초기 고전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 아직도 정치 쇄신의 좌표를 제시하고 있지 못한 민주통합당과 새 정치 주창자들 모두 새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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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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