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일부 표현에서는 남성이 중심이고 따라서 대표성을 갖는다는 의식을 확인시킨다. ‘소년체육대회’라 하고 ‘소년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소년체육대회에는 ‘소녀’들도 참가하지만 ‘소녀’들이 가려진 것이다. 일상의 말에서 ‘소년’은 여자아이를 포함하지 않는다. ‘소년체육대회’와 ‘소년법’에서는 ‘소년’이 ‘소녀’까지 대신한다. 그렇다고 누구도 불합리하다고 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라 여겨서 그렇다. ‘청년’은 상대어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여성이 드러날 때는 굳이 ‘여’를 붙이는 일이 흔하다. ‘여검사’, ‘여교사’, ‘여대생’이 된다. 이런 표현은 검사, 교사, 대학생으로서보다 먼저 ‘여성’으로 본다는 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일상에서 ‘여검사’나 ‘여교사’로 부르는 일은 드물다. 공적인 공간에서는 이렇게 부르는 일이 흔하다.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여’를 빼고 말하는 게 더 자연스럽고 적절할 때가 많다.
굳은 남성 중심적 표현을 바꾸기는 어렵다. 바꾼다고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도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알고 의식하는 건 변화의 뿌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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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