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빛 발견] 베풀다/이경우 어문부장

[말빛 발견] 베풀다/이경우 어문부장

이경우 기자
입력 2019-07-03 22:42
수정 2019-07-04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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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임금은 선정을 베풀었다.” 왕이 절대권력을 가진 왕정 시대 이 말은 자연스럽다. 임금은 곳곳에서 ‘베풀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시시때때로 은혜를 내리고, 자비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런 행동들은 모두 ‘베푸는’ 것으로 표현됐다. 민주주의 시대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런 것들이 해당되지 않는다. “그 대통령은 선정을 베풀었다”고 하면 불편하다. ‘베풀다’가 낯설게 한다.

‘베풀다’는 주체를 제한한다.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는 자연스럽지만, ‘손주들은 할머니에게 사랑을 베풀었다’는 어색하다. 어떤 손주도 할머니에게 사랑을 ‘베풀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위가 높거나, 권력을 가졌거나, 존경받는 위치에 있거나 한 이들이 ‘베풀다’의 주체가 된다. 그렇다 보니 도움이나 혜택을 받게 한다는 사전적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 여기에 ‘권위’, ‘존중’이란 사회적 의미가 더해진 말이 됐다.

한때 ‘의술’은 대부분 ‘베풀다’로 서술됐다. 단순한 의료행위일 때도 습관처럼 ‘베풀다’가 왔었다. 권위를 붙인 것이다. 지금은 생각과 말이 바뀌었다. ‘의술을 펼치다’가 더 많이 보인다. ‘베풀다’가 쓰이는 공간이 좁아지고 있다. 권위가 물러간다.

wlee@seoul.co.kr

2019-07-0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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