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돼지엄마/김경민 · 구멍 뚫린 양말/장선자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돼지엄마/김경민 · 구멍 뚫린 양말/장선자

입력 2019-05-30 17:18
수정 2019-05-31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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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엄마 /김경민

50×20㎝, 청동에 아크릴릭, 2008

조각가. MBC 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 수상.
돼지엄마 / 김경민
돼지엄마 / 김경민 50×20㎝, 청동에 아크릴릭, 2008
조각가. MBC 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 수상
구멍 뚫린 양말 /장선자

이모 집에 심부름을 갔는데

모르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나와 선볼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맘에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구멍 뚫린 양말 사이로 보이는

하얀 엄지발가락이 갑자기 멋있어 보이고

맘이 갔습니다

우리는 맘에 들어 자주 만났습니다

하루는 둑길을 걸어 광양까지 갔습니다

그 사람이 자장면을 먹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메뉴판을 보더니 나가자고 해서

다시 걸어서 집으로 왔습니다

나중에 돈이 모자라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자장면 한 그릇

못 사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순천의 할머니들이 글을 배워 그림도 그리고 시도 썼습니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멋진 책을 냈지요. 장선자 할머니의 글, 시일까요, 아닐까요. 시는 은유라고 믿는 전통적인 평론가들에게 이 글은 시가 아닐지 모릅니다. 내 눈에는 시군요. 구멍 뚫린 양말 사이 하얀 엄지발가락이 너무 멋져 보입니다.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존재(발가락)가 보석의 광휘를 얻게 되는 순간입니다. 궁핍을 아름다움으로 바꾼 마음의 미학이 있습니다. 진정성보다 더 우월한 수사는 지상에 없습니다.

곽재구 시인
2019-05-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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