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산앵두나무와의 가위 바위 보/심재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산앵두나무와의 가위 바위 보/심재휘

입력 2020-03-12 17:08
수정 2020-03-13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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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김종학
봄/김종학 60.6×72.7cm, 캔버스에 오일, 2008
전 서울대 미대 교수. ‘설악의 화가’, ‘꽃의 화가’로 유명.
산앵두나무와의 가위 바위 보/심재휘

동네 입구 꽃집 구석에는

잔가지들을 함부로 거느린 나무가 있어서

오고 가는 길에 볼품없더니 산앵두나무란다

산을 버리고 꽃집 구석의 화분에

발목도 없이 웅크리고 앉아

제 몸을 파는 산앵두나무

한철 노숙을 제 얼굴에 드리우고 있어서

많이 야위었다 여기었더니

삼월 어느 저녁엔 나를 불러 연두 주먹을 내보인다

이내 주먹을 펴 보인다

다음엔 필경 분홍의 무언가를 낼 심사인데

나는 연두도 분홍도 못 되는

기껏 빈 손바닥을 쳐다보다가

무엇을 내도 필패이려니 싶어

그냥 그 나무 옆에 집 없는 사람처럼

서 있다가 왔다

젊은 시인은 꽃집 구석에서 만난 산앵두나무와 가위바위보 하려다 멈춥니다. 처음엔 꽃 아직 안 핀 산앵두나무가 어리숙해 보여 가위바위보를 하면 이길 것 같았지요. 그 순간 자신의 삶 생각합니다. 집, 사랑, 결혼, 직장, 여행…. 모든 싸움에서 이긴 적 없습니다. 산앵두나무와의 가위바위보 또한 필패하지 않겠는지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궁핍과 사랑. 젊은 날 시인이 운명적으로 사랑하고야 말 덕목 아니겠는지요. 나 가위바위보 하면 꼭 져 줄 착한 물앵두나무들 꽃피는 마을 알고 있지요. 오세요, 봄에 그곳에서 우리 가위바위보 해요.

곽재구 시인
2020-03-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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