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라부부가 트럼프를 달랠 수 있을까

[세종로의 아침] 라부부가 트럼프를 달랠 수 있을까

윤창수 기자
윤창수 기자
입력 2025-08-01 00:54
수정 2025-08-01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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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 11월까지 ‘휴전’
라부부로 중국 이미지 끌어올려
관세위협에 문화의 힘으로 대응
무역전에서 문화전까지 패권전

“이게 (에르메스)버킨백처럼 팔린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손녀인 열여덟 살 카이가 라부부 인형을 사면서 친구와 나누는 대화다. 홍콩 출신 디자이너 룽카싱이 만들어 낸 라부부는 중국 팝마트와 제휴하면서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북유럽의 엘프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라부부는 이빨 9개를 드러낸 험악한 표정이지만, 귀엽기 그지없다.

트럼프 2기 집권으로 미중 무역전쟁의 긴장이 높은 가운데 중국은 라부부의 인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5세기 중국산 비단과 도자기가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팔렸듯 이젠 중국의 문화상품이 틱톡, 위챗 등 ‘디지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를 타고 세계로 팔린다는 것이다.

라부부의 인기로 홍콩 증시에 상장된 팝마트의 시장가치는 지난해 600% 증가했다. 명품 가방을 사듯 팝마트 앞에 줄을 서고 품절 인형을 서로 사기 위해 싸움도 벌어진다.

미중 관세전쟁은 세 차례 협상을 통해 두 차례 유예되면서 올해 11월 12일까지는 ‘휴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중국과 잘 지내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휴전 종료를 앞두고 열릴 예정인 미중 정상회담에서 어떤 돌발행동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기를 꺾으려 할지 모른다.

라부부에 열광하는 전 세계 젊은이들은 이 인형이 중국산이란 인식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중국이 라부부를 ‘중국산 문화상품의 성공’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결국 미중 패권다툼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심산이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6월 기자회견에서 라부부 인기와 관련해 “각국 국민이 점점 더 쿨해지는 중국을 느낄 기회를 더 많이 갖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문화상품이 세계적 인기를 얻는 사례는 점차 늘고 있다. 서유기를 기반으로 한 비디오 게임 ‘검은 신화: 오공’을 비롯해 애니메이션 ‘너자2’ 등이 최근 세계 시장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는 중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은 닫혀 있고, 자국의 재정 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미국은 다른 나라에 퍼주기만 한다는 분노에서 비롯됐다. 올해 1분기 역성장했던 미국 경제가 2분기 들어 성장세를 회복한 것도 트럼프 관세 정책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1분기 -0.5%였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분기에는 3.0%를 기록하며 올 상반기 미국은 1.2% 성장에 그쳤다.

중국은 미국의 불만에 대해 외국 세력의 도움이 아니라 인민의 피와 땀으로 경제 발전을 이뤄 냈다는 입장이다. 19세기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미국 등 서방 열강의 침입에 무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원통함도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다. 트럼프 1기 무역전쟁 당시 중국인의 사기에 도움이 됐던 것은 다름 아닌 6·25전쟁이었다. 중국은 이를 ‘항미원조전쟁’이라고 부르며 서구 제국주의와 싸워 이긴 첫 승리라고 주장한다. 트럼프 1기 때는 북한 개마고원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린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가 큰 인기를 끌었다.

냉전 시대에 이념 대립을 판다 외교로 녹였듯 2차 무역전쟁에서는 라부부로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순화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위협의 수준을 끌어올릴수록 중국은 순진한 라부부의 고무 얼굴 뒤에서 문화적 매력을 전파하려 들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싸구려 공장’에서 ‘세계의 첨단 공장’으로 진화하는 동안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한국의 제조 수준을 뛰어넘었다. 중국이 한국을 능가하지 못할 단 한 가지 분야가 있다면 그건 ‘한류’로 대변되는 문화로 여겨졌다.

우상화를 경계해 아이돌 숭배도 금지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제약 때문에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의 문화 산업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라부부는 그동안 중국이 공자학원 등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문화적 영향력인 ‘소프트파워’를 완성해 냈다. 강압적인 형태가 아니라 부드럽기 그지없는 털 인형으로 말이다.

윤창수 국제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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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수 국제부 전문기자
윤창수 국제부 전문기자
2025-08-01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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