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달콤한 그 이름, 참다래와 키위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달콤한 그 이름, 참다래와 키위

입력 2019-11-20 17:42
수정 2019-11-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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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육성한 참다래 신품종들. 맨 윗줄은 골드원, 가운데 줄은 스위트골드, 아랫줄은 감록이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육성한 참다래 신품종들. 맨 윗줄은 골드원, 가운데 줄은 스위트골드, 아랫줄은 감록이라고 불린다.
얼마 전 전북 김제에서 열린 국제종자박람회에 다녀왔다. 다양한 작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실외 전시장에는 우리나라 주요 채소의 다양한 품종을 소개한 정원이 펼쳐졌다. 그중 한 무밭엔 ‘전무후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나만 이 이름이 흥미로웠던 게 아니었는지 박람회 관련 뉴스에서 전무후무 무 육성자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꽃이 안 피는 무에 전무후무하다는 의미로 이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지인은 작년에는 이곳에서 ‘따다죽어’라는 고추를 보았다며, 결실률이 워낙에 좋아 따다 죽을 정도라는 설명에 같이 웃었다.

모든 식물에는 이름이 있다. 산과 들에서 남몰래 살던 어느 식물을 인간이 발견하는 순간 그에겐 이름이 붙고 세상에 알려진다. 모든 것은 이름을 붙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몇 년 전 한 식물학자가 제주 백약이오름에서 참나물속 미기록종을 발견했고 국명을 무엇으로 지을지 고민한 끝에 이름을 백약이참나물이라 했다. 또 다른 식물학자는 울릉도에서 바늘꽃속 신종을 발견하고, 크기가 큰 바늘꽃인데 ‘큰바늘꽃’은 이미 있다며 결국 ‘울릉바늘꽃’이라 이름 붙였다. 산과 들에 사는 자생식물의 이름에는 대체로 원산지 정보나 식물의 특징을 띠는 이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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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자생 다래. 최근 다래를 재배하는 농장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 자생 다래. 최근 다래를 재배하는 농장이 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도시에서 이용하는 원예 식물은 다르다. 식물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대중이 원하는 이름으로 붙여지기 쉽다. 도시의 식물은 원예 ‘산업’ 안에 있고, 산업에서 식물은 우리에게 선택돼야 비로소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 기관에서 육성한 품종은 상업적인 이유보다는 공공의 목적에서 탄생한 것이기에 식물의 특징이 드러나는 이름이기 쉽지만, 기업에서 육성한 경우엔 좀더 직관적인 이름을 띠게 된다. 기업은 이익 창출을 위한 곳이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이름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 곁 식물들은 다들 그만한 사연으로 이름을 얻는다.

그리고 여기 조금은 특별한 사연으로 이름을 가진 과일이 있다. 요즘 한창 마트와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키위. 키위의 원래 이름은 키위가 아니었다.

1900년대 초 식물에 관심 많은 프랑스와 영국 출신 선교사들이 중국 서남부에서 다래나무속 한 종의 종자를 뉴질랜드에 가져가 ‘차이니즈 구스베리’라는 이름으로 재배했다. 그렇게 재배와 개량을 거쳐 1950년대 이후 재배 면적이 증가하며 과일로서 산업화됐다. 이후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을 하려고 보니 ‘차이니즈 구스베리’라는 이름이 거슬린 것이다. 새로운 이름을 고민하던 차, 당시 헤이워드라는 우량 품종이 뉴질랜드의 국조인 키위새와 닮았다며 키위라 이름 붙여 수출길에 올렸다.

그렇게 중국의 다래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키위라는 이름을 얻었다. 누군가는 이 사건을 세계 최고의 마케팅이자 ‘희대의 식물 납치 사건’이라고 말하지만, 언제나 인간이 끼어드는 순간 모든 일은 늘 이렇게 흘러가지 않는가.

키위는 뉴질랜드의 대표 과일로서 세계로 퍼져 나갔다. 현재 뉴질랜드와 이탈리아에서 키위 생산의 80%를 차지하며, 중국도 최근 생산이 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들을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키위’라는 이름은 결국 브랜드명이기에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것은 ‘다래’에 진짜라는 의미의 ‘참’을 붙여 참다래라 부르고 있다. ‘다래’라는 이름 또한 ‘달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니 키위와 참다래는 결국 같은 말이다.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이들은 사과처럼 수백 년 전부터 우리가 이용해 온 과일이 아니다. 불과 50여년밖에 안 된 과일이고, 기억을 돌아보면 나 역시 키위의 그림 기록은 본 적이 없다. 모두 사진 기록이다. 키위가 육성된 후에는 이미 사진 기술이 발달해 품종을 사진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건 지금 우리가 먹는 헤이워드 품종 외에 아보트, 브루노, 몬티 등의 품종이 존재했으나 크기와 맛에서 헤이워드만 못해, 사라진 이 품종의 기록 또한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조급한 마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육성한 참다래를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다.

달콤한 골드키위인 스위트골드 참다래, 그리고 골드원과 감록. 모두 이름에서 달콤함을 띠는 우리나라 육성 신품종 참다래들이다. 최근엔 그려야 할 ‘다래’가 더 생겼다. 우리나라 자생의 토종 다래를 개량한 새로운 품종들도 생겨나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어 소비자 입맛과 선택의 폭은 넓어졌고, 결국 품질이 좋다면 이름이 어떻든 알려지고 사랑받을 수 있는 여지는 많아진다. 이름이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는 있지만,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힘은 결국 품질에 있다. 자연과 식물에 있는 ‘진정성’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9-11-2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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