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ATM 창구의 변신/정기홍 논설위원

[길섶에서] ATM 창구의 변신/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3-01-15 00:00
수정 2013-01-1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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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맹위를 떨친 며칠 전 밤 9시 무렵, 서울 지하철 발산역 근처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창구 안에 외투로 무장한 중년 10여명이 들어차 있었다. 생경한 풍경이다. 이 시간대에 무엇을 하는 이들일까. 작은 발짓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순간, 한 사람의 손에 든 단말기가 울렸다. 그는 말없이 문을 박차고 나선다. 이날 10여분간 신호음을 받은 사람은 3명. 모두가 발길을 바삐 옮겨 문 밖으로 사라졌다. 대리운전 기사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추운 바깥 날씨 탓에 이곳을 손님을 기다리는 장소로 애용하고 있었다. 일부는 한밤 대리운전에 나선 ‘투잡스족’인 듯했다.

ATM 창구가 혹한 속에 이들의 ‘대기 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이 시대 가장들의 쓸쓸한 자화상을 이곳에서 볼 줄이야···. 외투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걷는 퇴근길이면 이들의 무덤덤한 모습이 문득문득 발길에 차인다. 바깥 날씨가 아주 매섭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춘삼월 봄은 언제쯤 올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3-01-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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