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봄의 일/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봄의 일/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7-03-31 22:32
수정 2017-03-31 22:35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큰 길가 플라타너스 굵은 가지들이 뭉텅뭉텅 잘려 나간다. 이른 아침부터 장정 여럿이 대드는 것이 척 봐도 때가 오기를 기다린 모양새다. 이 나무 저 나무 공중을 옮겨 다니는 크레인에서 무심하게 전동톱은 돌아간다.

손발 저릿해지는 기계음에 잠도 깨고 봄도 깬다. 자를 테면 진작에나 자를 일이지. 고달픈 엄동 다 보낸 마당에 이제 와서 무슨 심술 악취미인가 싶고.

잘린 가지는 삭정이가 아니다. 떨어진 가지 더미에서는 수액의 향기 설핏하다. 상처 난 자리에 더욱 맹렬히 자기 치유의 기운이 돋는다니, 더 분발해 싹 틔워 보라고 멀쩡한 생가지를 쳐낸다니. 졸음 같은 소생의 시간에 천둥 같은 생명의 역설.

흙 있는 손바닥만 한 땅 어디에서나 봄이 봄일을 하느라 바쁘다. 봄비 오기도 전에 제 힘으로 부푼 화단 흙에서도 연한 속잎들은 봇물로 솟는다. 쑥 말랐던 자리에 쑥이, 비비추 시들었던 자리에 비비추가 실금을 그어 놓고 착착 다시 돌아오고 있다.

새움 틔우려 제 몸 내어주는 일, 갈 때 올 때 다르게 소리 소문 없이 제자리 찾아와 있는 일, 욕심 없는 봄의 일.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7-04-01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새벽배송 금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새벽배송 금지’ 제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노동자의 수면·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새벽 배송을 원하는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 민생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반발이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1. 새벽배송을 제한해야 한다.
2. 새벽배송을 유지해야 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