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모내기/최용규 논설위원

[길섶에서] 모내기/최용규 논설위원

최용규 기자
입력 2017-06-13 22:54
수정 2017-06-14 00:4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바짝 말라 볼품없는 논도 일 년에 두어 번은 보는 이의 혼을 쏙 빼앗는다. 모내기 끝난 오뉴월 푸르름이 먼저일까. 철원 가는 도로 옆 바둑판 논도, 강화 섬 서쪽 드넓은 평야도 녹색의 향연으로 물결치는 지금. 모판을 빠져나온 모는 어느새 어른 무릎 높이까지 자라 살랑대는 미풍에 몸을 맡겼다. 서너 달 뒤면 황금 물결이 일 것이다. 지독한 가뭄 탓에 더욱 눈부신 청록의 싱그러움은 제 잘나 그런 게 아니다. 다 친구 잘 만난 덕이리라. 친구이자 주인인 농심(農心)이 메마른 논바닥에 흠뻑 물을 댔고, 괜찮은 다른 친구 수로(水路)가 물길 아닌 핏줄이 되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스무 살, 금산 추부 성당리 촌구석에는 요긴한 수로도, 지금은 흔하디흔한 이양기 한 대 없었다. 어스름한 시각, 모판에 둘러앉아 모 밑동을 살짝 당겼고, 날이 새기 무섭게 묶은 모를 물 받아 놓은 논 여기저기에 던졌다. 거머리가 뜯는지도 모르고 동네 아줌마들의 ‘인간 이앙기’라는 말에 홀려 허리 부러지는 줄 알았다. 청개구리가 몸에 좋다며 혓바닥으로 핥아 목구멍에 집어넣고 걱정하던 이십 세 청년도 있었다. 정이 깊던 시절이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2017-06-14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10월10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야할까요?
오는 10월 개천절(3일)과 추석(6일), 한글날(9일)이 있는 기간에 10일(금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시 열흘간의 황금연휴가 가능해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는 이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다음 기사를 읽어보고 황금연휴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1. 10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야한다.
2. 10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할 필요없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