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오로지 지금/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오로지 지금/황수정 논설위원

입력 2017-08-27 22:26
수정 2017-08-28 01:33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손 글씨를 쓸 일도 보여 줄 일도 드문 세상이다. 종이에 글씨를 써야 할 때는 무르춤해진다. 마음먹은 필치는 온데간데없이 각(角)이 뭉개진 글꼴. 내가 써 놓고는 내가 멋쩍다.

야무졌던 글씨체가 무너지니 속수무책이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 시간이 얼만가. 자판 탓만도 아니다. 잘못은 속도 강박이다. 펜을 잡으면 머릿속 회로는 자판의 속도로 손 글씨를 쏟아내라며 우르르 몰아붙인다. 글씨가 제 매무새를 다듬을 틈이 없다.

생활의 이력은 필체에도 깃든다. 동동거리는 조급증에 글꼴의 맵시를 뺏겼다. 삶의 빠듯한 동선을 들키나 싶어 누가 안 봐도 버릇처럼 민망해지고.

일없이 굴러다니는 공책에 묵혀 둔 만년필을 갖다 댄다. 속도의 폭력에 퇴행한 글씨에게 명예를 되찾아 주려 한다. 속력의 횡포에 주눅 들지 말 것. 지금 이 순간 쓰고 있다는 생각만 오로지 할 것.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

제 발로 지금을 걷어찬 흔적. 망가진 손 글씨를 돌보며 한 수 챙긴다. 말로 퍼주고도 되로 돌려받는 줄 모르는 계산 착오가 삶에서 어디 손 글씨뿐일까.
2017-08-28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10월10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야할까요?
오는 10월 개천절(3일)과 추석(6일), 한글날(9일)이 있는 기간에 10일(금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시 열흘간의 황금연휴가 가능해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는 이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다음 기사를 읽어보고 황금연휴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1. 10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야한다.
2. 10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할 필요없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