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지하도 교회/최광숙 논설위원

[길섶에서] 지하도 교회/최광숙 논설위원

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입력 2018-01-03 22:40
수정 2018-01-03 23:5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퇴근길에 광화문 지하도의 노숙자를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 엄동설한에 종이 상자로 잠자리를 만들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 깊은 곳까지 싸늘한 한기가 스며든다. 지난해 연말은 좀 달랐다. 여러 명이 한 노숙자 주변을 에워쌌는데 이들은 노숙자에게 털실 장갑, 핫팩 등을 나눠줬다.

갑자기 노숙자의 겨울 나기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성경책도 등장했다. 천사 같은 이들은 서울 시내 한 교회에서 나온 교인들. 이들의 노숙자들을 위한 기도 소리가 지하도에 크게 울려 퍼졌다. 기도가 끝나자 그 노숙자가 “찬양하라 영혼이여~”라며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혹 그 노숙인의 과거 직업이 목사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찬송가와 기도는 훌륭했다. 이날 광화문 지하도는 그 옛날 작은 동굴 교회를 연상시켰다. 많은 돈을 들여 치장한 그 어느 웅장한 교회보다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었다.

어제 퇴근길에 우연히 그 노숙자를 다시 봤다. 지하도 기둥에 몸을 기대어 까만 표지의 찬송가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그의 얼굴이 다른 노숙자들과 달리 환히 빛났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8-01-04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