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어머니의 휴대전화/김상연 논설위원

[길섶에서] 어머니의 휴대전화/김상연 논설위원

김상연 기자
김상연 기자
입력 2020-07-14 20:28
수정 2020-07-15 09:45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무심코 어머니의 휴대전화(2G)를 들춰 봤다. ‘최근 통화기록’은 대략 이랬다. 큰딸, 막내딸, 둘째딸, 셋째딸, 작은아들, 셋째딸, (스팸), 둘째딸, 큰딸, 셋째딸, 둘째딸, 막내딸, (친구), 큰딸, 둘째딸, 큰아들, (교회), 막내딸, 큰딸…. 내 휴대전화에서 어머니의 등장 횟수는 30명 내지 50명 중 1명인 반면 어머니의 휴대전화에서 자식들의 등장 비율은 90%를 넘나들었다. 어머니는 내 삶의 극히 일부, 나는 어머니 삶의 거의 전부라는 사실을 ‘포노 사피엔스’ 시대는 꼼짝 못 하게 통화기록으로 입증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톡’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자식들이 스마트폰을 마련해 드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누르는 것도, 스치는 것도 아닌, 가볍게 터치해야 뜻을 이룰 수 있는 작동법을 힘겨워하던 어머니는 결국 다시 2G로 복귀하셨다. 그런데 어머니가 만일 스마트폰 작동에 능란했다면 행복하셨을까. 어머니는 ‘ㅋㅋ’와 ‘ㅠㅠ’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만족하셨을까. 어머니는 그저 뱃속에 열 달 동안 품고 있었던 자식들의 육성이 듣고 싶은 것은 아닐까.

세상의 모든 아들들아. 제발 어머니한테 전화 좀 하고 살자. 전화하기 싫으면 걸려 오는 어머니 전화라도 퉁명스럽게 받지 말자. 나한테 하는 소리다.

carlos@seoul.co.kr

2020-07-15 2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새벽배송 금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새벽배송 금지’ 제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노동자의 수면·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새벽 배송을 원하는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 민생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반발이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1. 새벽배송을 제한해야 한다.
2. 새벽배송을 유지해야 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