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어머니/임병선 논설위원

[길섶에서] 어머니/임병선 논설위원

임병선 기자
입력 2021-12-05 20:18
수정 2021-12-06 01:3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길섶에서
길섶에서
어머니는 방금 전 했던 질문을 묻고 또 묻는다. 대답하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시는데 놀라울 정도로 빨리 같은 질문이 되돌아온다.

누님 부부가 모처럼 휴가를 떠나 내가 대신 어머니와 생활하고 있는데 벌써 이렇게 짜증 내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20년 가까이 어머니를 극진히 모셔 늘 우리 부부를 부끄럽고 미안하게 만드는 누님은 얼마 전 어머니로부터 생전 처음 육두문자를 들었다며 많이 속상하고 서운했다고 했다. 치매에 공격성이 동반된다더니 이제 시작인가. 두려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래도 정정하신 편이다. 식사하시면 늘 손수 양치를 하고, 워낙 깨끗하게 개인위생을 챙기는 분이라 여느 치매환자들처럼 옷이나 침구를 버리지 않으신다. 회사 동료는 하루에 이불 다섯 채를 빨래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집 며느님은 그래도 어르신을 요양병원 보내면 안 된다고 한단다. 해서 난 동료에게 “형수 업고 다니시라”고 당부하곤 한다.

고교 졸업 후 40년 되도록 어머니란 존재를 늘 잊고 살아온 나는 누님네가 돌아오는 대로 ‘임무’ 마치고 서울 돌아가 늘 그렇듯 어머니를 잊고 지낼 거다. 이기적인 난, 어머니를 잊을 거다. 어머니가 ‘갇힌 세계’를 잊을 거다. 분명히 그럴 거다.

2021-12-06 2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새벽배송 금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새벽배송 금지’ 제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노동자의 수면·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새벽 배송을 원하는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 민생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반발이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1. 새벽배송을 제한해야 한다.
2. 새벽배송을 유지해야 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