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 순회특파원 좌충우돌 유럽통신] 정치도 축제가 된다고요?

[박건형 순회특파원 좌충우돌 유럽통신] 정치도 축제가 된다고요?

입력 2010-09-16 00:00
수정 2010-09-1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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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공산당·극좌 잡지 주최 ‘휴머니티 축제’ 80주년

“공산당이 축제를 한다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낯설기 그지없었다. 북한 사람들도 온다는 말을 듣자, 혹시 한국에 돌아가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받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들었다. 하지만 지난 주말, 파리 북쪽 르 부르제 지역에서 만난 ‘휴머니티 축제’는 한국 정치에 이골이 난 사람들에게 꼭 권할 만한 경험이었다. ‘TV나 신문에서 보는 정치’, ‘정치인들만의 정치’가 아니라 세상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언할 수 있고, 마이크를 잡고 대통령을 비판해도 아무도 두렵지 않은 곳. 마치 과거 고대 그리스의 토론장이 현대에 재현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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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산당과 극좌 성향 잡지 ‘르 휴머니티’가 파리 북쪽 르 부르제에서 개최한 제80회 휴머니티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프랑스 공산당과 극좌 성향 잡지 ‘르 휴머니티’가 파리 북쪽 르 부르제에서 개최한 제80회 휴머니티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핑크 플로이드·U2등 메인무대 장식

프랑스공산당과 극좌 성향 잡지 ‘르 휴머니티’가 주최하는 휴머니티 축제는 올해로 80주년을 맞았다. 1930년 공산주의가 한창 날개를 펼치던 시절, 소외된 사람들을 공산주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대적인 토론회를 개최한 것이 축제의 시작이었다. 이후 1960~70년대 미국에서 록과 집시문화가 성행하면서 콘서트와 축제가 결합되는 문화가 유행하자 이를 벤치마킹해 대대적인 공산주의·사회주의자의 축제로 거듭났다. 핑크 플로이드, U2 등 사회주의적 성향을 가진 세계적 그룹이 매년 축제의 메인무대를 장식하고 있다.

사흘 동안 축제를 찾은 사람은 25만명이 넘는다. 드넓은 광장과 행사장은 구석구석 사람이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붐볐다. 올해 유독 이 축제가 관심을 모은 것은 프랑스의 현재 상황과 맞물려 있어서다. 집시와 불법체류자를 추방하는 이민법 강화, 연금수령 연령을 높이는 재정감축 정책 등 현 정부의 정책은 축제에 모인 사람들의 신념과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복지에 더 많은 혜택을’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 위에 세워졌다’ ‘불법체류자도 인권이 있다’는 등의 내용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사흘간 25만 참가… 경찰은 없어

정치인들도 함께 호흡했다. 사회주의 계열의 정치 거물들은 수행원은 물론 연대와 마이크조차 없이 목청을 높여 길거리에서 정부를 비판했고 사람들은 아낌없는 박수 대신 신랄한 질문으로 답했다. 장관 등 정부인사와 우파 지식인들도 기꺼이 토론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 전역에서 지역·노조별로 설치된 1000여개의 부스는 현안에 대한 토론, 주장을 담은 연극, 공연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선동적인 구호 대신 정돈된 생각을 또렷하게 말했고,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사례를 들어 차분하게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모습이 한국 정치에 길들여진 입장에서는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십만명이 모인 행사장에서 경찰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이는 무질서한 느낌은 한국의 시위 현장보다도 심했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으레 등장하는 소매치기조차 자취를 감춘 곳이었다.

영국의 전설적인 스카펑크그룹 ‘매드니스’가 메인무대에 등장하자 축제는 절정을 이뤘다. 그들이 노래하는 인권과 자유에 대한 관객들의 열망에서 영국 문화라면 드러내 놓고 혐오시하는 프랑스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치가 곧 생활이고, 더 나아가 축제로까지 승화되는 곳. 낯설었지만, 그래서 더 부러운 현장이었다.

글 사진 파리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2010-09-1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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