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가 가장 아끼는 외교관 잃었다”

“美가 가장 아끼는 외교관 잃었다”

입력 2010-12-15 00:00
수정 2010-12-1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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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브룩 타계 외교가 애도 물결

미국 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리처드 홀브룩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사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69세. 지난 10일 대동맥 파열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던 홀브룩이 숨지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비롯해 각계 각층이 조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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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홀브룩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사 AP=연합뉴스
리처드 홀브룩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사
AP=연합뉴스
●대동맥 파열로 쓰러져

오바마 대통령은 홀브룩 임종 직전 유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홀브룩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지치지 않는 공직자였다.”며 “그는 진정한 거인”이라고 평가했다. 힐러리 장관은 성명을 통해 “오늘은 나에게, 미 국무부에, 미국에 슬픈 날”이라면서 “동남아시아에서 냉전체제 이후 유럽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는 그의 공헌으로 인해 평화로운 미래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 상원 외교관계위원장 존 케리 의원은 그를 “완강하고 결코 멈추지 않는 외교관”으로 묘사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도 “홀브룩의 외교술과 전략적 비전, 전설적 결의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하는 등 국제사회 역시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홀브룩은 불도저란 별명이 붙을 만큼 저돌적이고 급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생전의 그를 ‘미국 정부가 아끼는 최후의 외교관’, ‘미국에서 가장 거친 외교책사’로 평가했다.

●카터 행정부 때 35세 차관보 올라

홀브룩은 케네디 행정부부터 오바마 행정부까지 역대 모든 민주당 정부에서 고위 외교관으로 재직하는 기록을 남겼다. 1941년생인 홀브룩은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베트남에서 외교관으로 첫발을 뗀 뒤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차관보에 올랐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선 유럽 담당 차관보로 보스니아 전쟁을 끝내는 외교협상을 이끌었다.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기도 했다. 홀브룩은 1977~1981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로서 10·26 직후 최규하 권한대행 체제에서 진행되는 정치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12·12쿠데타 직후에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대사에게 신군부의 권력 강화 움직임을 견제하는 입장을 취하게 하기도 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2010-12-1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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