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설립 10주년..구조적 한계 속 일부 성과

ICC 설립 10주년..구조적 한계 속 일부 성과

입력 2012-07-02 00:00
수정 2012-07-02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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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재판소’ ‘강대국엔 손 못대’ 비판도 “독재자들, 공소시효 없는 처벌 의식 시작” 효과

세계 최초의 상설 국제 전범재판소인 국제형사재판소(ICC)가 1일로 창설 10주년을 맞았다.

10주년을 전후해 ICC가 소재한 네덜란드 헤이그를 중심으로 각국에서 관련 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ICC가 그간 이룬 성과들을 돌아보는 이 행사들에선 ICC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ICC는 집단살해범죄(Genocide), 전쟁범죄, 반인도주의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형사 처벌하기 위한 법정이다. 2차대전 이후 상설 국제 전범재판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으나 진척이 없다가 냉전이 끝나고 1990년대 들어 르완다와 보스니아에서 잇따라 인종학살이 일어나면서 논의가 급진전됐다.

결국 120개 나라 정부가 서명한 로마조약의 비준 국가가 지난 2002년 7월1일 60개국을 넘으면서 발효돼 ICC가 출범하게 됐다. 임기 9년의 재판관 18명, 검찰부, 행정사무국 등 조직을 갖춰 실제 일을 시작한 것은 2003년 2월부터다.

ICC는 그동안 주요 범죄 7건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고 관련 용의자 20여 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기소된 용의자 중엔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수반,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 악명 높은 우간다 반군 ‘신의 저항군(LRA)’의 최고사령관인 조셉 코니 등이 포함돼 있다.

또 사실상 ICC 산하인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와 시에라리온 특별법정(SCSL) 등의 별도 한시적 기구들이 라도반 카라지치와 찰스 테일러 등의 전범들에 대한 재판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ICC가 실제 재판을 진행 중인 것은 3건 뿐이다. 유죄 판결이 난 것은 지난 3월 콩고 군벌 토마스 루방가에 대해 10년 형을 선고한 것이 유일하다. 전쟁범죄, 집단살인, 강간, 미성년 납치와 소년병 활용 등 무려 30여 개의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LRA의 수괴 코니는 지난 2005년 기소됐으나 아직 체포되지 않은 채 만행을 계속 저지르고 있다.

ICC가 “인류가 천인공노할 중대 범죄의 만행을 저지른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상황을 끝내기 위한” 설립 목적을 제대로 이루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ICC가 다른 국제형사사법 기구처럼 자체 경찰력 등의 강제수사권이 없는데서 비롯됐다. ICC 검찰부가 기소하더라도 회원국들이 기소된 자를 잡아서 넘겨줘야만 체포와 구속 집행, 재판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ICC가 기소한 범죄 혐의자 중 6명만 체포됐으며, 현재 5명이 ICC의 구금을 대행하는 네덜란드의 교도소에 구치돼 있다.

그동안 ICC가 기소한 범죄자들의 국적은 거의 모두 우간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케냐, 리비아, 아이보리 코스트 등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이 때문에 국제형사재판소가 아니라 ‘아프리카 형사재판소’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ICC는 아프가니스탄, 콜롬비아, 그루지야, 온두라스, 북한에 대한 예비조사에도 착수하기는 했다. 그러나 체포권이 없고 인력 부족으로 기존 기소 범죄를 다루는 것도 벅차 별 진전이 없다. 이에 따라 ICC는 가입국이 현재 121개 국에서 지구상 모든 나라로 늘어나고 각국이 적극 협조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와 중국 등 강대국들이 비준하지 않는 것이다. 자국 권력자들이나 군인 등이 기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ICC는 유엔 산하기구는 아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해 ‘지시’하면 비가입국에 대해서도 조사할 수 있다. 그러나 미.중.러 등 거부권을 가진 강대국들은 자국 국민은 물론 다른 나라에 대한 ICC의 조사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간 유엔이 의뢰한 것은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 뿐이며 시리아의 반체제세력 학살도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좌절됐다.

이런 구조적 한계 외에 ICC가 최근 새롭게 어려움을 겪는 것은 재정난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회원국들은 예산 증액에 매우 인색했다. 그나마 인권보호에 가장 관심이 높은 유럽 국가들마저 유로존 위기 이후엔 분담금을 줄이려 애를 써 예산은 지난 2년간 동결 내지 사실상 삭감됐다.

올해 예산은 1억880만 달러다. 90개국에서 온 직원 700명 인건비 등 경상운영비 감축이 불가피하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재정난으로 ICC 고유 임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인 유일의 ICC 재판관이자 3년 임기의 ICC 소장직을 두 번째로 다시 맡은 송상현 소장은 무엇보다 할 일은 늘어나는데 예산은 줄어 고심하고 있다고 연합뉴스에 토로했다.

송 소장은 ICC가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으나 “그나마 ICC 출범으로 전범과 반인도주의적 범죄자들에 대한 단죄가 서서히 이뤄지면서 잔인무도한 독재자들도 공소시효가 없는 ICC의 처벌을 의식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엔 등 다른 국제기구들에 비해 ICC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일천하다면서 국제사회가 ICC의 성과와 역할에 대해 장기적 안목에서 더 관심을 보이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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