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함께 한’ YS-빌 클린턴 인연…북핵갈등에도 우의는 지속

‘5년 함께 한’ YS-빌 클린턴 인연…북핵갈등에도 우의는 지속

입력 2015-11-22 10:23
수정 2015-11-2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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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북핵위기 이후 제네바합의 때까지 대북접근 놓고 갈등 1993년 7월 클린턴 방한 때 ‘대도무문’ 친필휘호 써줘

22일 새벽 서거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가장 교류가 많았던 인사로는 빌 클린턴(69) 전 미국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비슷한 시기 정권을 출범하고 5년 재임기간 내내 미국 측 카운트로 있었던 클린턴 전 대통령과 개인적 우의를 나누면서도 대북 정책을 놓고는 긴장과 갈등을 숨기지 않으면서 한·미 관계의 굴곡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1993년초 불과 한달 간격으로 새로운 정권을 출범시킨 김 전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는 ‘밀월’을 미처 즐길 겨를도 없었다. 북한 핵문제가 한·미 관계를 흔드는 복병으로 부상한 것이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영변 미신고 시설 두곳의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시작된 이른바 ‘1차 북핵 위기’였다. 당시만 해도 대북 협상채널의 주도권은 한국이 쥐고 있었지만, 이때부터 북한 핵문제가 미국과 국제사회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초 김 전 대통령도 북핵문제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미국 측이 ‘대리협상’에 나서줄 것을 기대했지만, 갈수록 협상이 미국의 주도로 돌아가자 우려와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미국과 북한이 뉴욕 고위급 회담을 통해 북한의 NPT 탈퇴 효력을 정지하는 합의를 이끌어내자 김 전 대통령은 이를 비판하는 태도를 취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여기에는 미국이 한국을 소외시키고 북한과 독자로 관계 개선을 시도한다는 개념의 ‘통미봉남’에 대한 국내적 우려가 작용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 부인이자 현재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은 1993년 7월 국빈 방한했고,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김 전 대통령의 반발을 무마하고자 애를 썼다는 후문이다.

방한기간 김 전 대통령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조깅을 한 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친필 휘호를 직접 써준 일화가 유명하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이 주도하는 북·미 회담에 대한 국내적 우려를 강하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초부터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또다시 불편한 관계에 놓였다. 미국은 IAEA 사찰단이 영변 재처리시설에 대한 사찰에 실패하자 북한과의 외교적 협상이 더이상 불필요하다고 보고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추진하는 등 강경한 태도로 돌변했다. 당시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북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폭격 계획까지 검토했다.

그해 6월 미국이 주한 민간인 소개령을 검토하기 시작하자 김 전 대통령은 이를 전쟁이 임박한 징후로 이해하고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를 불러 “미국이 우리 땅을 빌려 전쟁을 할 수는 없다”며 “한국군의 통수권자로서 군인 60만 중에 절대 한 사람도 동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한 항의의 뜻을 표했다. 한반도 위기는 이내 평양을 깜짝 방문했던 지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 의해 진정됐다.

1994년 10월 타결된 제네바합의를 놓고 김 전 대통령은 강력한 불만을 표출해 당시 중간선거를 앞두고 ‘업적’을 만들려고 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제네바 합의를 ‘설익은 타협’이라고 지칭하면서 “우리는 북한과 400차례 넘게 대화했지만, 아무것도 이행된 게 없었다”며 미국의 협상 태도를 문제 삼기도 했다.

이처럼 북핵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었지만, 두 사람은 한·미 정상으로서의 개인적 우의를 유지했다고 외교소식통들은 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4년 펴낸 자서전 ‘나의 인생’(My Life)에서 1993년 7월 방한했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힐러리와 나는 김영삼 대통령의 손님으로서 영빈관에 묵었다”며 “그곳에는 실내 수영장이 있었고 몸을 담그려고 하자 갑자기 음악이 흘러나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에서부터 재즈에 이르기까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수영을 했다”며 “이것은 한국 고유의 접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썼다. 그는 특히 “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의회 연설이 끝난 뒤 나는 한·미 간의 오랜 동맹에 대한 감사와 그것을 유지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한국을 떠났다”고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5년 7월 답방한 김 전 대통령에게 국빈만찬을 베풀고 이를 즐겼다고 소개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은 워싱턴D.C. 한복판에 조성한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에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6년 4월16일 제주도를 방문했을 당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남·북·미·중 4자 회담을 제안했었다고 회고했다.

김 전 대통령은 영부인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서는 공식 접견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호감을 표시했으나, 개인적 차원에서는 구체적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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