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W, 아프간 병원 폭격 ‘형사적 책임’ 철저한 조사 촉구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병원 폭격은 ‘인간적 실수에 의한 오폭’인가, 아니면 ‘시스템 상 문제로 빚어진 전쟁범죄’인가?지난 10월 3일 아프간 주둔 미군의 쿤두즈 병원 공습으로 어린이와 국경 없는 의사회(MSF) 소속 의료진을 포함한 42명이 죽고 10여 명이 부상한 사건의 진상 규명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HRW)는 아프간 병원 폭격은 전쟁범죄일 수 있다며 독립적 기관에 의한 철저한 조사를 미국 국방부에 촉구했다고 21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이 보도했다.
HRW는 지난 주말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미군 측에 ‘형사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할 강력한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미군 당국이 이를 실무자들의 실수와 단순한 규정 위반 혐의로 조사 징계할 것이 아니라 ‘형사적 범죄행위’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동안 폭넓게 증거를 수집, 검토한 결과 이 폭격이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HRW는 전쟁범죄는 설사 ‘악의적 의도’가 없더라도 성립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목표물을 분명하게 확인하지 못한 채 민간인을 공격하는 ‘무분별함과 부주의’ 만으로도 성립된다는 것이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따르면, 제네바협약은 목표물을 오인하는 단순 실수는 전쟁범죄로 규정하지 않지만 ‘무분별한 행위’는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설명했다.
HRW는 또 미군이 조사 과정에 영향을 미칠 우려와 조사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될 것을 고려해 아프간 주둔 미군 지휘 계통의 힘이 미치지 않는 독립적 기관이 조사를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HRW의 서한은 존 캠벨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이 10월 25일 국방부 출입기자단 회견에서 이 사건을 ‘인간적 실수와 기술적 오류로 빚어진 오폭’이라고 해명한 것과 이후 처리 과정을 재차 반박하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해외 대테러 작전 과정에서의 민간인 희생 사건을 더 투명하게 조사하겠다는 과거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시 다짐했음에도 또다시 과거처럼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도는 가운데 약속 준수를 촉구한 것이다.
캠벨 사령관은 당시 “공습 관여 장병들은 목표물이 병원인 줄 알지 못했다”며 “목표물을 검증해보는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병원에서 450미터가량 떨어진 탈레반 사령부 건물을 타격하기 위해 폭격기가 출격했으나 폭격기탑재 기계 장치가 아닌, 지상의 미군과 아프간 특수부대가 전달해주는 말에 의존하는 실수를 했다는 것이 미군 당국의 설명이었다.
군 당국은 “관련자들을 직무 정지하고 행정적 또는 군 기강확립 차원의 징계조치들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징계 대상 장병들의 수와 세부 징계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HRW 등 인권단체들은 이런 해명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현지 미군 당국에 병원의 정확한 위치가 등록돼 있고, 폭격기 승무원들이 목표물 관련 첩보 내용에 문제가 있음을 안 뒤에도 공격했으며, 1시간여의 폭격 동안 이곳에서 적대적 반격 행위가 전혀 없었는데도 계속 공격했으며, 지상군이 뒤늦게라도 오폭을 제어하지 않은 점 등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따른 의도가 있거나 최소한 단순 실수가 아닌 미군의 시스템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잘못이라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지적이다.
HRW 관계자는 “미국 정부는 그동안 여러 민간인 사상 사건 조사와 관련해 좋은 선례를 남기지 못했다”면서 “우리는 군 사법체제를 그리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군 내부 조사 및 징계 진행 상황도 군 당국의 함구로 외부에선 전혀 모르고 있다.
HRW 워싱턴 사무소의 사라 마곤 국장은 “쿤두즈 병원 비극을 오히려 미군의 투명성을 높이고 믿음을 잃은 군 사법체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MSF는 제네바 협약 추가 의정서 조항에 따라 1991년 설립된 국제기구인 ‘국제인도주의사실조사위원회’(IHFFC)에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해달라고 청원했다.
IHFFC는 이에 언제든지 조사에 착수할 수 있지만 규정 상 사건 당사국 정부가 허락해야 조사가 가능하다면서 지난 10월 14일 미국과 아프간 정부에 조사 허락을 요구했다.
그러나 양국 정부가 아직 침묵을 지켜 IHFFC 창설 이후 최초가 될 수 있는 실제 조사 활동이 결국 불발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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