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된 핵무기 관련 제재 대상과 별도…미-이란 해빙무드에 ‘찬물’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란의 핵무기 관련 제재 해제를 발표한 이튿날인 17일 오후 4시30분(현지시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TV 카메라 앞에 섰다.만면에 웃음을 띤 로하니 대통령은 전국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이 기자회견에서 “핵협상은 중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델”이라며 “핵협상에 대한 지지를 보낸 국민께 감사한다”고 기쁨을 표했다.
이어 이번 제재 해제로 저유가에도 내년(올해 3월21일 시작) 경제 성장률 5%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내보였다.
그러나 로하니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이 약속을 어기는 것을 많이 봐왔다. 제재가 풀렸다고 해서 미국에 대한 불신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의 불길한 ‘예감’이 현실화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1시간여에 걸친 로하니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나는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미 재무부는 오후 6시30분 이란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발표한 것이다.
이날 새로 특별제재대상(SDN) 명단에 오른 개인과 기업 등 11개 대상을 살펴보면 16일 제재에서 풀린 대상과 겹치지는 않는다.
즉, 이날 신규 제재로 전날 역사적으로 선언된 대이란 제재의 실효가 훼손되거나 하루 만에 뒤집히진 않았다는 뜻이다.
미국 정부의 조치는 여러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일단 모처럼 외교적으로 접점을 찾은 미국과 이란의 해빙 분위기엔 충분히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될 수 있다.
지난달 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이란제재위원회’는 이란이 지난해 10월과 11월 시험발사한 탄도미사일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 1929호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미국 내부에선 핵합의안(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이행과 관계없이 탄도미사일 관련 제재는 8년간 유지된다는 점을 들어 이란에 새로운 제재를 부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란은 미국의 이런 움직임이 ‘꼼수’라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미사일 개발을 강행하겠다고 맞섰다.
지난달 15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보고서로 핵무기 개발 의혹이 해소된 만큼 핵탄두를 장착할 가능성이 없어졌고, 핵탄두를 장착할 가능성이 있는 탄도미사일 개발을 제재하는 1929호 결의안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지난달 31일 국방부에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는 미국의 태도는 불법적이고 적대적인 내정간섭”이라면서 “미사일 프로그램을 가속하라”고 지시했다.
탄도미사일 제재 부과가 양국간 부는 훈풍 속에 꺼지지 않은 불씨였던 만큼 이번 신규 제재 부과가 묘한 파문을 일으킬 공산이 크다.
동시에 미국은 핵무기 관련 제재가 풀렸지만 이란은 여전히 적성국이자 감시 대상국임을 국제 사회에 각인하고 핵합의를 벗어난 이란의 ‘일탈’엔 강경하고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그렇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미국 정부로선 이란과 타결한 핵합의의 큰 틀을 깨지 않으려고 나름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했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이란이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10월11일부터 제재 해제를 선언할 때까지 약 석 달간 국내 강경파의 압박에도 신규 제재를 미루고 있다가 선언 바로 다음날 신규 제재 카드를 내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