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개” “방울뱀” 막말 등장…공화주자들 ‘종교적 편협성’ 드러내개방·다양성 중시 흐름과 배치…9·11 테러 직후와 사뭇 다른 ‘대응’홀로코스트박물관, 나치 피해 빠져나온 유태인 비유하며 시리아 난민 수용 촉구
파리 테러 발생 1주일째를 맞은 20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사회에서는 그동안 물밑에 잠복해 잘 감지되지 않았던 ‘이슬람 혐오증’(Islamophobia)이 이곳저곳에서 분출하며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이민자의 나라‘로서 개방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이슬람 종교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종교적 편협성‘을 드러내거나 무슬림을 향한 물리적 위협과 협박을 가하는 일이 심심찮게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화당을 중심으로 일부 대선주자까지 이슬람 비판 대열에 합류하면서 이슬람 종교와 무슬림을 바라보는 시각과 대응이 대선 정국의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의 선두그룹에 속한 벤 카슨 후보가 19일 무슬림들을 ’미친개‘(a rabid dog)에 비유한 것이 단적인 예다.
카슨 후보는 알래스카 주 모빌에서 선거유세를 하면서 “아마도 당신의 동네에 미친개가 돌아다니고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그 개로 인해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아이들을 길거리에 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즉각 무슬림 단체와 정치인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무슬림 정치인으로 인디애나 주 출신인 안드레 카슨(민주당) 의원은 “거대한 잣대로 특정한 그룹을 낙인찍는 대선후보는 우리에게 필요없다”며 “그것은 바로 극단주의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난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카슨 후보는 평소 “무슬림 대통령은 미국의 헌법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와 무슬림계 미국인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파리 테러 직후 모스크(이슬람교사원)를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공화당의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내 무슬림을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무슬림 여부를 식별할 수 있는 특별한 신분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후보는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당연히, 그리고 반드시 무슬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야 한다”며 “데이터베이스를 넘어 더 많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일부 대선주자는 시리아 난민수용 문제를 놓고도 종교적 편협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텍사스 주 상원의원인 테드 크루즈와 플로리다 주 주지사 출신인 젭 부시 후보가 ’기독교인들‘에 한해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마르코 루비오 후보는 현 상황을 기독교와 이슬람 간 ’문명의 충돌‘로 규정했다.
오하이오 주지사인 존 케이식은 이슬람교의 확산 추세에 대응해 ’유대-기독교‘(Judeo-Christian) 가치를 전파하는 새로운 연방청의 신설을 주장했다.
이는 대선 후보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있다. 역시 공화당 소속인 시드 밀러 텍사스 주 농업장관은 페이스북에 시리아 난민들을 ’방울뱀‘(rattle-snakes)에 비유해 논란을 빚고 있다.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일각에서도 이 같은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18일 버지니아 주 로어노크 시의 데이비드 바우어스 시장은 시리아 난민수용 거부 입장을 밝히면서 과거 미국이 진주만 피습 직후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수용소에 격리시켰던 것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후원자이자 연예계 거물인 하임 사반은 무슬림에 대한 “더 엄격한 검증”을 요구했다가 논란이 되자 발언을 부분적으로 수정했다.
지역 사회에서도 이슬람과 무슬림을 비난하는 공개적 언행들이 등장하고 있다. 17일 저녁 미국 워싱턴D.C.에서 자동차로 두시간 가량 떨어진 버지니아 주 프레데릭스버그 지역에서는 ’모스크‘ 증축 문제를 놓고 지역민들이 토론하던 도중 한 남자가 “모든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라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면서 회의가 난장판으로 바뀌었다.
16일 새벽에는 미국 텍사스 주의 주도(州都)인 오스틴 시 외곽의 플루거빌에 있는 이슬람사원(모스크)에서 누군가가 인분을 투척하고 꾸란(이슬람경전)을 찢어 놓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비슷한 시기 콜로라도주 덴버에 있는 ’ISIS‘라는 이름의 서점도 물리적 피해를 입었다. 주인인 제프 해리슨은 방송에 “누군가가 서점의 간판에 돌을 던지거나 페인트칠을 하고 앞문을 박살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반(反) 이슬람 기류는 2001년 9·11 테러 직후 나타났던 미국 정치권과 사회적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고 미국 워싱턴 포스트(WP)가 지적했다.
당시 공화당 소속이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9·11 테러의 배후인 알 카에다와 이슬람 종교를 구분하면서 이슬람 세력을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시켰고 이는 초당파적인 지지와 여론의 호응을 얻었다.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발생 엿새 만에 한 이슬람교사원을 찾아 무슬림을 향한 ’관용‘을 강조했다. 그는 “테러범들은 스스로의 믿음에 대한 반역자들로서 사실상 이슬람 종교 자체를 ’하이잭‘(납치)하려고 한다”며 “미국의 적은 무슬림 친구들이 아니라 급진적인 테러리스트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사회 내에서는 이 같은 과도한 이슬람 정서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WP)는 사설에서 바우어스 시장의 ’일본계 미국인 강제격리‘ 두둔 발언을 거론하며 “어떤 면에서는 바우어 시장이 2차세계 대전 당시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지금의 시리아 난민들과 비교한 것은 옳다”며 “이들을 향한 광분이 인종적 편견, 전쟁 히스페티,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에 나왔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WP는 이어 “만일 한 세대가 지나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이땅에서 일어날 수 있었느냐‘고 묻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우울하다”고 지적했다.
워싱턴D.C.에 소재한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은 성명을 내고 “수천명의 합법적 난민들에 대해 등을 돌려서는 안된다”며 미국의 정치인들과 시민들이 시리아 난민들을 싸잡아 비난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 박물관은 “많은 난민들이 이슬람 국가(IS)의 위협으로부터 탈출하고 있다”며 “이들이 겪고 있는 곤경은 나치의 학살위협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유태인들이 겪었던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 박물관은 테러리스트가 시리아 난민 행렬에 흘러들어올 수 있다는 ’안보적 우려‘에 대해서는 미국 입국전에 해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분투척 사건을 당한 플루거빌 이슬람 사원의 경우 각계각층에서 기부금이 밀려드는 등 온정이 답지하고 있다.
특히 잭 스완슨이라는 7살짜리 남자 아이가 저금통을 깨 인분청소 비용으로 20달러를 기부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교훈'을 일깨워주고자 아들을 이슬람 사원에 데려왔다는 어머니 로라 스완슨은 “파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여기서 는 일어나지 않는다”며 “우리는 여기 모여 서로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람 사원 측 관계자는 “잭이 낸 20달러는 200만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다”며 고마워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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