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혁명원로 시대의 종말…시진핑 독주 시대의 시작

中 혁명원로 시대의 종말…시진핑 독주 시대의 시작

이창구 기자
이창구 기자
입력 2015-07-23 23:24
수정 2015-07-2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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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스·완리 前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덩샤오핑과 개혁 이끈 원로 올해 8명 사망

완리(萬里·99) 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영결식 열린 지난 22일 톈안먼(天安門) 광장에는 조기가 게양됐다. 베이징 바바오산(八寶山) 혁명묘지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모두 나와 99년을 살다간 혁명원로의 시신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링지화(令計劃) 전 통일전선공작부장이 시 주석이 휘두른 반부패 칼날에 맞아 몰락하는 것을 지켜본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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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광장의 오성홍기(五星紅旗)가 조기로 게양된 것은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지난달 19일에는 차오스(喬石·91)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영결식을 추념하는 조기가 걸렸었다. 톈안먼 광장 조기 게양은 국가주석, 전인대 상무위원장, 국무원 총리, 중앙군사위 주석,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사망했을 때만 이뤄지는 특별한 의식이다.

차오스와 완리의 죽음은 중국 공산당 역사에 큰 의미를 갖는다. 젊은 시절 마오쩌둥(毛澤東) 밑에서 공산혁명과 항일전쟁을 수행한 뒤 19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과 함께 개혁·개방을 지휘한 원로들이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베이징이공대학의 후싱더우(胡星斗) 교수는 서울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차오스와 완리는 개혁·개방 노선을 설계하고 집행한 마지막 남은 원로였다”면서 “권력투쟁에 나서지 않았고 자식들도 권력과 부를 탐하지 못하게 엄격하게 관리해 인민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다”고 말했다.

차오스와 완리만큼 유명하진 않아도 젊은 시절 장정(長征·1934~1935년)에 참여하고 1949년 신중국 건설의 주역이었던 이들이 올해 유난히 많이 사망했다. 바이두 등을 검색한 결과 올해 바바오산(八寶山) 혁명묘지에 안장된 혁명원로들은 8명이나 됐다.

8명 중에는 좌파의 핵심으로 덩샤오핑과 평생 노선 투쟁을 벌인 덩리췬(鄧力群)도 있었다. 그는 지난 2월 100세로 숨졌다. 혁명원로는 아니지만 공산당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러시아 여성 리사(李莎·101)도 지난 5월 사망했다. 리사는 마오쩌둥에 앞서 초기 중국 공산당 지도자를 지낸 리리싼(李立三)과 국경을 넘은 세기의 사랑을 한 여성이다.

100세 남짓한 원로들이 대부분 숨진 것은 혁명 원로 시대의 종언을 뜻하는 동시에 중국 공산당이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평론가 장리판(章立凡)은 “개혁·개방의 초석을 다졌던 이들의 사망은 그동안 공산당이 유지했던 좌표가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면서 “훨씬 복잡해진 국내외 정세에 대응하고 개혁·개방을 심화시키기 위해선 새로운 좌표가 필요한데, 그 좌표를 그리는 것이 시 주석 등 5세대 지도자들의 임무”라고 말했다.

1997년 덩샤오핑이 사망하기 전까지 중국은 사실상 ‘원로정치’ 국가였다. 덩을 포함한 ‘8대 원로’가 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를 잇따라 실각시키고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 체제의 골간을 짰다. 2007년 보이보(簿一波)의 사망으로 8대 원로가 모두 사라지면서 원로 정치도 막을 내렸다. 그리고 올해 차오스·완리 등이 세상을 떠나면서 혁명원로들은 대부분 역사책 속으로 들어갔다.

혁명원로 시대의 종언은 시 주석의 권력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혁명원로의 자제 그룹인 태자당 소속이었던 시 주석은 같은 태자당이었던 보시라이(薄熙來·보이보의 아들·전 중칭시 당서기)를 처벌해 태자당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이 이끌었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파벌도 링지화 낙마로 무너졌다. 장쩌민 전 주석이 수장인 상하이방도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법위 서기와 함께 몰락했다. 기존 파벌의 붕괴와 원로그룹의 퇴장으로 ‘시진핑 파벌’만 남은 셈이다.

후싱더우 교수는 “시 주석이 차오스와 완리의 만류에도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을 처벌했다는 얘기가 많다”면서 “권력이 강화되는 만큼 역사적인 책임도 무거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2015-07-24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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