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음식 검시관 “英 독살시도 알고 시식가 고용”

히틀러 음식 검시관 “英 독살시도 알고 시식가 고용”

입력 2013-07-03 00:00
수정 2013-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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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 된 獨 뵐크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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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곳 뵐크
마르곳 뵐크
세계 제2차대전 중 독일인 마르곳 뵐크(96)는 몇 년이나 고급 식사를 즐겼지만 항상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나치 독일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가 먹을 음식에 독극물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고용된 시식담당자였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2일 뵐크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뵐크는 히틀러가 1945년 자살하기까지 2년 반 동안 매일 오전 11시에서 정오 사이에 음식을 먹어야 했다. 별 탈이 없으면 음식은 당시 ‘늑대굴’로 불리던 폴란드 북부의 야전지휘본부로 보내졌다.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였다. 음식은 흰 아스파라거스와 최상품 과일, 꽃양배추 같은 훌륭한 것들이었다”고 뵐크는 회고했다. 다른 여성 14명과 함께 일했던 뵐크는 “시식담당이 따로 있었던 이유는 히틀러가 첩보를 통해 영국의 독살 시도를 알았기 때문”이라면서 “매끼 시식했던 우리는 서로 껴안고 울었고 ‘내일 살아있을까’ 하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뵐크는 목숨을 걸고 히틀러를 위해 일했지만 그를 직접 만난 적은 없고 애견을 보는 데 그쳤다고 전했다.

뵐크는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일부 군 간부들이 늑대굴에 설치한 폭탄이 터진 1944년 7월 20일도 기억한다. 당시 뵐크는 군인들과 함께 근처 막사에서 영화를 보던 중이었다. “갑자기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고 우리는 나무 벤치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누군가 ‘히틀러가 죽었다’고 소리쳤지만 알고보니 그는 손을 조금 다쳤을 뿐이었다”고 뵐크는 전했다. 이 사건 이후 뵐크는 감시를 받는 숙소로 옮겨져 죄수 같은 생활을 해야했다. 뵐크는 히틀러 자살 후 베를린으로 도주해 은신했다. 소련군은 베를린을 포위하고 조여왔으며 방공호에서 공습을 피하던 뵐크는 소련군에게 붙들려 2주 동안 성폭행을 당했다. 뵐크와 함께 일하던 다른 14명의 시식자들은 야전지휘본부에에 남아 있다 모두 처형됐다.

전쟁이 끝나고 연금보험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뵐크는 소련군에게 붙잡혀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도 만났다. 뵐크는 전쟁 전 살았던 집에 되돌아와 여생을 보내고 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2013-07-0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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