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아랫목 같은 따뜻한 서정시

고향 아랫목 같은 따뜻한 서정시

입력 2010-01-23 00:00
수정 2010-01-23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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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네번째 시집 ‘귀가 서럽다’

그의 시에는 가마솥 뚜껑 사이로 넘쳐 흐르는 밥물 같은 구수함과, 아픈 시절 바라보는 저녁 노을 같은 서러움이 함께 있다. 이대흠(42)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귀가 서럽다’(창비 펴냄)는 구수함에 대한 기억을 통해 산다는 것의 서러움을 확인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려는 몸부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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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시인
이대흠 시인
신화적 존재를 패러디한 ‘지나 공주’ 연작, 극단적으로 오가는 짧은 서정시와 긴 호흡의 산문시 등 독특한 실험을 보여준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 시인은 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난 소박한 서정을 시의 중심에 둔다.

 ‘삶은 빨래 너는데 // 치아 고른 당신의 미소 같은 // 햇살 오셨다 // 감잎처럼 순한 귀를 가진 // 당신 생각에 // 내 마음에 // 연둣물이 들었다’(‘행복’ 중)처럼 시인은 이 소박함을 포근한 시어 사이에 배치하고, 그 안에서 일상의 희망을 찾아낸다.

 그가 내민 소박함은 많은 부분 향토적 정서에 기대고 있다. 전남 장흥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시인은 기억 속 아련한 고향을 하나둘 꺼내 놓는다. 어머니가 논일을 가면 혼자 가마솥에 밥을 짓던 어린 날부터, 성마른 어른들과 푸근했던 이웃들의 모습은 이제는 시인 곁에서 사라진 것들이다.

 또 능숙한 사투리는 이 정서를 더욱 짙게 한다. 예를 들면 ‘기사 양반! 저짝으로 조깐 돌아서 갑시다 / 어칳게 그런다요 뻐스가 머 택신지 아요? (중략) 저번챀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 / 그 기사가 미쳤는갑소 // 노인네가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 저번챀에도 / 내가 모셔다드렸는디’(‘아름다운 위반’) 같은 부분. 하지만 이러한 구수함은 단순히 지난날에 대한 미련과 서글픈 현실을 표현하는 것 이상이다. 시인은 이러한 고향 풍경을 통해,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채울 수 없는 거대한 공허함만 가득한 이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이번 시집도 많은 작품이 어머니를 통해 세상을 읽고 있다는 것은 전과 다름 없다. 과거의 추억과 고향의 정서를 대변하는 어머니는 시집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품은 모습이지만, 한편 죽어가는 풀·나무들을 싱싱하게 살려내는 힘을 가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2010-01-23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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