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맥베스를 찾다
올 연말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무대 소극장에 오르는 ‘어느 무명 배우의 슬픈 멜로 드라마, 맥베스’(박정의 연출, 극단 초인 제작)는 여배우 이상희가 펼치는 1인극이다. 1인극이 특별한 이유는 극단 초인이 이미 집단극으로 맥베스를 다룬 바 있어서다. 그것은 지난 6월 국립극장 무대에 올랐던 ‘궁극의 절정, 그 전율 맥베스’다. 말하자면 두 가지 버전을 쏟아낸 것이다.●스스로 맥베스가 되어 맥베스 얘기 풀어
앞선 버전은 맥베스나 주변 인물들이, 결국 권력 다툼에 지나지 않을 일들에 대해 온갖 괴로운 척은 다 하며 멋드러진 대사를 쏟아내고 있을 무렵, 그 시대를 살았던 민중들은 어땠을까 하고 되묻는 작품이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황산벌’에서 백제병사 거시기(이문식)가 고향의 황금 들녘에서 엄마(전원주) 품에 행복하게 안기며 끝났던 것 같은 질문이다.
이번 버전은 어느 한 무명 배우가 스스로 맥베스가 되어 연기에 몰입하면서 맥베스 얘기를 풀어내는 내용을 담았다. 1인극답게 텅 빈 무대에는 사각의 꼭지점에 상자가 놓여져 있고 배우는 이 사각형을 돌아다니며 맥베스 스토리를 연기해낸다. 때문에 상자 사이를 이동할 때 끊임없이 발걸음의 리듬을 바꾸고, 목소리를 바꾼다. 압권은 레이디 맥베스와의 대화. 손가락에 꽂은 헝겊 인형과 나누는 대화 방식이 인상적이다. 맥베스의 배신과 살인 장면 때 영화 ‘태양은 가득히’ 주제가가 흘러나오는 것도 절묘하다.
가장 큰 미덕은 뭐니 뭐니 해도 1인극에 걸맞게 모든 요소들을 철저하게 잘 내다 버렸다는 데 있다. 가끔 고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작품을 보면 배우들이 묵직한 극을 소화해내기 위해 ‘죽도록’ 고생하는 반면, 극 전체는 어정쩡한 경우가 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겠다는 연출의 의욕이 넘쳐서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철저히 군더더기를 버렸다. 다만, 무명 배우 얘기는 너무 짧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무명 배우가 어떤 상황인지는 조금 더 던져줄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키워드는 극 초반 날고 싶다던, 무명인 신세가 답답하다던, 무명 배우의 한탄이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한때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던진 ‘내 안의 파시즘’(독재는 외부의 거대 권력이 아니라 개인의 일상생활에 똬리 틀고 있다는 주장)이라는 키워드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여러 반박이 있었지만, 그런 반박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다름 아닌 지난 대선·총선 결과였다. 그 덕에 한때 진보 진영에서는 ‘내 안의 이명박 찾기’가 유행이었다.
●몸짓·말투 등 다양한 리듬… 지루할 틈 없어
마찬가지다. 지난 버전이 궁중비사와 무관한 민중의 울음을 그려냈다면, 이번 작품은 오히려 그 민중을 겨냥한다. 너도 날고 싶지 않니? 너도 잘 나가고 싶지 않니? 너도 권력을 쥐고 싶지 않니? 너도 맥베스가 되고 싶지 않니? 맥베스 연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무명 배우가 마침내 극 막판에 선보이는 기괴한 웃음은, 지금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몸짓, 말투 등에서 다양한 리듬감을 소화해내며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은 배우 이상희에게 박수를. 1만 5000~2만원. (02)929-641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0-11-22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