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의 해’ 역사적 전통과 근거 있나?

‘흑룡의 해’ 역사적 전통과 근거 있나?

입력 2012-01-03 00:00
수정 2012-01-03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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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이 부채질…황룡·청룡에 비해 드물게 보여

2012년 임진년은 용띠 해다. 임진(壬辰)에서 진(辰)이라는 말이 바로 12개 띠 동물 중에서도 용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런 용띠 해 중에서도 올해 임진년을 ‘흑룡의 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임진년을 이렇게 부를까?

띠동물 민속전문가인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임진년의 ‘임’(壬)자를 이렇게 해석한 데서 비롯된 현상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12지(支) 중 ‘壬’은 방향으로는 북쪽이며, 계절로는 겨울, 동양의 오행설에 따르면 물(水)이고, 색깔로는 검은색(玄 또는 黑)에 해당돼 임진년을 ‘흑룡의 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천 관장은 “이런 해석에 따른다면 60갑자 중 5번 오는 용띠 해 중 나머지 해인 갑진년(甲辰年)은 청룡(靑龍), 병진년(丙辰年)은 적룡(赤龍), 무진년(戊辰年)은 황룡, 경진년(庚辰年)은 백룡의 해가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임진년을 ‘흑룡의 해’로 부르기 시작해 다른 해에 비해 특히 국운이나 개인의 행운이 융성한 것으로 본 것은 어느 정도 역사적 근거와 전통을 갖추고 있을까?

천 관장은 “이번과 같이 흑룡의 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과 같은 일은 아주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근 30년째 한문고전 번역에 종사하는 박헌순 수석연구위원은 “흑룡이라는 말 자체가 한문고전에서는 다른 용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게 보인다”면서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을 보면 오행설의 상극(相克) 원리가 적용돼 백룡이 흑룡을, 혹은 반대로 흑룡이 백룡을 이긴다는 식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조선의 건국설화에서 태조 이성계의 할아버지 도조(度祖)는 꿈에서 서로 싸우는 흑룡과 백룡 중 흑룡을 활로 쏘아 죽임으로써 조선왕조 건국의 기틀을 쌓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에서 흑룡은 퇴치 대상이다.

나아가 용의 해인 임진년에 일어난 사건 중 임진왜란을 흑룡의 해에 일어난 일로 언급한 문집 기록도 있어 흑룡이 요즘과 같은 길함의 대명사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박 연구원은 덧붙였다.

물론 흑룡을 길조로 여긴 흔적도 더러 보인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신사임당과 홍봉한은 각각 흑룡의 꿈을 꾸고서 율곡 이이와 혜경궁홍씨를 낳았다는 기록이 보이기도 한다. 이 경우 흑룡은 일종의 길몽이다.

음양오행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전통 천문우주론을 전공하는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또한 “용 중에서 흑룡은 청룡이나 황룡 같은 말에 비해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오행설로 흑룡이라는 개념이 나올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흑룡이 다른 용에 비해 특별히 신성하게 취급되었다고는 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동아시아 용의 여러 색깔을 묘사하는 말 중에서도 가장 자주 보이는 말은 청룡과 황룡이 있다. 더러 백룡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중 푸른색을 띠는 청룡은 계절로는 봄, 방향으로는 동쪽을 의미해 대체로 그 반대편 백호(白虎)와는 짝을 이루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모티브는 이미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더러 보이며, 실상 중국에서는 그 이전 한(漢)나라 시대에 등장한다.

반면, 누른빛이 도는 황룡은 중국의 전설시대 제왕 중에서도 중앙을 관장하는 황제(黃帝)를 묘사할 때 자주 보인다. 이 황제는 나중에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며, 이때 그가 탄 용이 바로 황룡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에서 비롯되어 황룡은 흔히 신선(神仙)이 타는 동물로 자주 등장한다. 고구려 광개토왕비문을 보면 고구려 건국시조 추모왕의 죽음을 바로 황룡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으로 묘사한 것이 단적인 예다.

천진기 관장은 “임진년을 ‘흑룡의 해’로 보아 국운 융성과 같은 기원을 담고자 하는 바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거기에 담긴 모종의 상술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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